연인들
- 김상미
내 몸에서 나가지 마
눈썹이 닿고 입술이 닿고
음부 가득 득실거리던 꿈들이 닿았는데
서릿발 같은 인생
겨우 겨우 달랬는데
나가지 마
시커멓게 열려 있는 비존재들.
그 허공 속으로
우린 연인들이야
날마다 새로워지는 마음
금빛 월계관처럼 육체에다 씌우며
몰아, 몰아, 그 뜨거운 파도
그 치열한 외침
인생이 보일 때까지
껴안고 또 껴안아야지
자지러지면 어때
신선한 육체의 광택
바다와 사막을 길어나르듯
땀 흘리며 몸부림치고 매달리면 어때
숨쉬는 육체의 수렁은
깊고도 깊어
나 네게서 떨어지지 않을래
쫙 쫙 쫙 입 벌리는 관능
몸이 몸을 먹는 경이,
경이 속으로
끝도 없이 흘러 흘러갈래
내 몸에서 나가지 마
우린 연인들이야
더러운 신의 놀라운 흔적들이야
땅이고
하늘이야
출처 : 김상미,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세계사, 1993.
*
아직 여자를 모를 때, 좀더 정확히 말해서 남녀가 몸을 섞는 순간의 쾌락에 대해 미처 알지 못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일찌감치 남들보다 조금 앞서며 읽던 소설들 가운데 황석영과 김성동은 내게 남녀교합의 여러 상황들을 알려주는 작품들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일어서 오랫동안 뻐근하고 불편한 순간들을 견뎌야만 하던 시절, 나는 성교의 클라이막스가 주는 순간이 어째서 불교에서 도를 깨우치는 순간에 비견되는지, 그 순간은 어째서 짧기만 한 건지 미처 알지 못했다. 남녀간의 교합이 주는 쾌락을 일러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 하는데 그것이 어째서 그리 슬프고 기막힌 인연인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운우지정을 일러 다른 말로 '무산지몽(巫山之夢)'이라 한다.
운우지정의 원출처가 되는 이야기인 셈이다. 중국 초(楚)나라 때의 시인 송옥(宋玉)이 지은 시가 중에 "고당부(高唐賦)"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시에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양왕이 송옥과 함께 운몽(雲夢)이란 곳에서 풍류를 즐기다가 고당관에 이르렀다. 그곳에 매우 신비한 형상의 구름이 피어오르기에 양왕이 송옥에게 물었다. 이 때 송옥이 임금에 이르길 저 구름은 조운(朝雲)이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부르게 된 것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며 전해 올렸다.
오래 전 어떤 왕이 고당관에 와서 연회를 베풀다가 피곤하여 잠시 오수를 즐기는데,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 말하길 "저는 무산에 사는 여인이온데, 왕께서 고당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습니다"라 하였다. 왕은 여인의 아름다움에 빠져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는데, 정사를 마치자 여인이 말하길 "저는 무산 남쪽의 험준한 곳에 살고 있는 여인이온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 아래에서 아침 저녁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입니다(妾在巫山之陽 高山之岨 且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라고 말한뒤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왕이 무산 쪽을 바라보니 과연 여인의 말대로 산봉우리에 신비로운 구름이 있었다. 그날부터 왕은 꿈속에 찾아온 여인을 그리워하여 그곳에 조운묘(朝雲廟)라는 사당을 세웠고, 이후 '무산지몽'과 '운우지정'은 남녀간의 정교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양대(陽臺)란 말 그대로 볕이 좋은 대를 뜻하지만 숨겨진 의미는 은밀한 사랑을 뜻한다. 무산지몽의 임금은 두 번 다시 그 여인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양대불귀지운(陽臺不歸之雲)'이란 말은 한 번 인연을 맺고,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알고보면 '운우지정'이란 매우 슬픈 이야기인 것이다.
시인이 "내 몸에서 나가지 마"라고 말하는 이유, 얼핏 매우 야한 듯 보여도 생각해보면 '사랑', '연인', '정교(情交)'의 허망함에 치를 떨어본 사람이면 안다. 돌아서면 남이 아니라 내 몸에서 나가면 모두가 다 남이다(흠, 자식은? 자식도 그런 것 같다~, 흐흐).
- 김상미
내 몸에서 나가지 마
눈썹이 닿고 입술이 닿고
음부 가득 득실거리던 꿈들이 닿았는데
서릿발 같은 인생
겨우 겨우 달랬는데
나가지 마
시커멓게 열려 있는 비존재들.
그 허공 속으로
우린 연인들이야
날마다 새로워지는 마음
금빛 월계관처럼 육체에다 씌우며
몰아, 몰아, 그 뜨거운 파도
그 치열한 외침
인생이 보일 때까지
껴안고 또 껴안아야지
자지러지면 어때
신선한 육체의 광택
바다와 사막을 길어나르듯
땀 흘리며 몸부림치고 매달리면 어때
숨쉬는 육체의 수렁은
깊고도 깊어
나 네게서 떨어지지 않을래
쫙 쫙 쫙 입 벌리는 관능
몸이 몸을 먹는 경이,
경이 속으로
끝도 없이 흘러 흘러갈래
내 몸에서 나가지 마
우린 연인들이야
더러운 신의 놀라운 흔적들이야
땅이고
하늘이야
출처 : 김상미,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세계사, 1993.
*
아직 여자를 모를 때, 좀더 정확히 말해서 남녀가 몸을 섞는 순간의 쾌락에 대해 미처 알지 못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일찌감치 남들보다 조금 앞서며 읽던 소설들 가운데 황석영과 김성동은 내게 남녀교합의 여러 상황들을 알려주는 작품들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일어서 오랫동안 뻐근하고 불편한 순간들을 견뎌야만 하던 시절, 나는 성교의 클라이막스가 주는 순간이 어째서 불교에서 도를 깨우치는 순간에 비견되는지, 그 순간은 어째서 짧기만 한 건지 미처 알지 못했다. 남녀간의 교합이 주는 쾌락을 일러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 하는데 그것이 어째서 그리 슬프고 기막힌 인연인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운우지정을 일러 다른 말로 '무산지몽(巫山之夢)'이라 한다.
운우지정의 원출처가 되는 이야기인 셈이다. 중국 초(楚)나라 때의 시인 송옥(宋玉)이 지은 시가 중에 "고당부(高唐賦)"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시에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양왕이 송옥과 함께 운몽(雲夢)이란 곳에서 풍류를 즐기다가 고당관에 이르렀다. 그곳에 매우 신비한 형상의 구름이 피어오르기에 양왕이 송옥에게 물었다. 이 때 송옥이 임금에 이르길 저 구름은 조운(朝雲)이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부르게 된 것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며 전해 올렸다.
오래 전 어떤 왕이 고당관에 와서 연회를 베풀다가 피곤하여 잠시 오수를 즐기는데,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 말하길 "저는 무산에 사는 여인이온데, 왕께서 고당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습니다"라 하였다. 왕은 여인의 아름다움에 빠져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는데, 정사를 마치자 여인이 말하길 "저는 무산 남쪽의 험준한 곳에 살고 있는 여인이온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 아래에서 아침 저녁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입니다(妾在巫山之陽 高山之岨 且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라고 말한뒤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왕이 무산 쪽을 바라보니 과연 여인의 말대로 산봉우리에 신비로운 구름이 있었다. 그날부터 왕은 꿈속에 찾아온 여인을 그리워하여 그곳에 조운묘(朝雲廟)라는 사당을 세웠고, 이후 '무산지몽'과 '운우지정'은 남녀간의 정교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양대(陽臺)란 말 그대로 볕이 좋은 대를 뜻하지만 숨겨진 의미는 은밀한 사랑을 뜻한다. 무산지몽의 임금은 두 번 다시 그 여인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양대불귀지운(陽臺不歸之雲)'이란 말은 한 번 인연을 맺고,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알고보면 '운우지정'이란 매우 슬픈 이야기인 것이다.
시인이 "내 몸에서 나가지 마"라고 말하는 이유, 얼핏 매우 야한 듯 보여도 생각해보면 '사랑', '연인', '정교(情交)'의 허망함에 치를 떨어본 사람이면 안다. 돌아서면 남이 아니라 내 몸에서 나가면 모두가 다 남이다(흠, 자식은? 자식도 그런 것 같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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