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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심재휘 - 편지, 여관, 그리고 한 평생


편지, 여관, 그리고 한 평생

- 심재휘

후회는 한 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보면 단단한 것들은 모두 안으로 잠겨 있었다

편지들은 용케 여관으로 되돌아와 오랫동안 벽을 보며 울고는 하였다

편지를 부치러 가는 오전에는 삐걱거리는 계단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는데 누군가는 짙은 향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슬픈 일이었지만

오후에는 돌아온 편지들을 태우는 일이 많아졌다
내 몸에서 흘러나간 맹세들도 불 속에서는 휘어진다
연기는 바람에 흩어진다
불꽃이 '너에 대한 내 한때의 사랑'을 태우고
'너를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나'에 언제나 머물러 있다

내가 건너온 시장의 저녁이나
편지들의 재가 뒹구는 여관의 뒷마당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향해 있는 것들 중에 만질 수 있는 것은 불꽃밖에 없다
는 것을 안다 한 평생은 그런 것이다

*
심재휘 시인을 빌어 말하면...

나의 후회는 너무 일찍, 너무 많이 살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청춘이 내 삶의 더러운 진창을 헤매는 동안 매음굴 앞 나의 집 입구엔 막간을 이용해 몸을 팔거나 사기 위한 장사치들이 줄을 섰고 3층 집 옥상에서 나는 남부끄럽게 그들의 밀담을 엿들으며 수음을 했다. 사랑하는 그녀는 매음굴 입구에서 되돌아 나갔다. 홍등은 밤새 아롱지게 빛나 손을 뻗으면 끈적끈적한 열기가 축축하게 묻어났다. 콩쾅대며 계단을 뛰어오르는 손님들과 지쳐서 자신의 방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내 방까지 헐떡이며 올라온 그녀들을 되돌려 보내며 나는 세상 가장 깊은 절벽에 자신의 타액으로 집을 짓는다는 바다제비가 된 기분이었다. 얼마나 많은 침을 흘려야만 나는 나를 안전하게 가둘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욕망이 개처럼 침을 흘린다. 강의를 들으러 나서는 아침, 계단 바닥엔 강한 남자로 만들어준다는 유혹이 흩뿌려져 있고, 땅 바닥엔 사람들이 토해낸 오물 지뢰로 넘실댔다. 세상은 온통 지뢰밭이었다. 오전엔 문학을 공부하고, 오후엔 삶의 적나라한 현장과 마주하며 밤새워 쓴 글들을 아침이면 다시 게워냈다. 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허무는 제 아무리 반복해도 여전히 허무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