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3. 09:05

다리


- 신경림


다리가 되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스스로 다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 등을 타고 어깨를 밟고
강을 건너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서럽다
왜 스스로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남만 건네주는 것일까
깨고 나면 나는 더 억울해 지지만


이윽고 꿈에서나마 선선히

다리가 되어주지 못한 일이 서글퍼진다


*


언젠가 글에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감정 중 하나는 자존감, 즉 자기존재감이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도 지겨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나로 온전히 서지 못할 때, 사랑도 지겹고, 허무해집니다. 그런데 때로 사랑에 이 자기존재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마음이 도리어 장애가 될 때도 있습니다. 나를 온전히 주고 싶다는 마음은 때로 나를 온전히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나란 존재를 고스란히 그의 마음에 쌓아놓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엔 강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엔 산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엔 벽도 있습니다. 이곳에선 온전했던 것들도 저 섬으로 옮겨지면 병들기도 하고 상처입기도 하고, 온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사람은 그 마음으로부터 죽는 것을...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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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23 09:20

    비밀댓글입니다

    • 2011.05.23 17:13 신고

      감정이란 친구에게 맛집을 소개하거나 재미난 책, 감동적인 영화를 소개하는 일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너무 넘치게 설명하거나 소개하거나 묘사했다가 막상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오는 실망감 같은 거요.
      저는 자기존재감이 나뿐만 아니라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지만 때때로 이 감정이 지나친 사람들은 남을 사랑하는데 있어 매우 불편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란 생각도 합니다.
      자존감을 강하게 어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기에 너무 바빠서 미처 남을 사랑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사람 같거든요.
      물론 나란 사람이 남을 사랑하기에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혹은 자기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기에 남에게 나를 온전히 맡기거나 보여주지 못한다는 건 자존감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 신뢰의 부족이지요.
      만화 <슬램덩크>에서 우리의 정대만 군이 맘놓고 3점슛을 날릴 때, 슛한 공이 림을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나오면 어쩌나 잠시 고민하지만 자신의 팀 동료들을 믿기에 맘놓고 슛을 날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