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 천양희
한밤중에 혼자
깨어 있으면
세상의
온도가 내려간다.
간간이
늑골 사이로
추위가 몰려 온다.
등산도 하지 않고
땀 한 번 안 흘리고
내 속에서 마주치는
한계령 바람소리.
다 불어 버려
갈 곳이 없다.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한다.
언 몸 그대로 눈보라 속에 놓인다.
출처 : 천양희, 『마음의 수수밭』, 창작과비평사, 1994
*
깊은 밤 세상 만물이 모두 잠든 것 같은 시간에 홀로 깨어난다. 곁사람의 고운 숨소리도, 태어난지 이제 막 7개월 된 딸 아이의 뒤척임도 저 멀리 있다. 갑자기 깨어나 부우우하며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는 냉장고, 초침의 재깍이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저 멀리 한길로 밤새워 북으로 달리는 차량 불빛이 서치라이트처럼 희번득하는 밤에 문득 이제 다 살아버린 듯 갈 곳도, 머물 곳도 없는 세상이란 생각이 악마처럼 창가로 유인하는 밤이다.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한다. 차라리 눈보라도 불면 좋으련만. 한 여름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건, 땀인지, 눈물인지... 축축하게 젖은 얼굴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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