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어린이/청소년

로버트 브라우닝 -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로버트 브라우닝 (지은이) | 케이트 그린어웨이(그림) | 정영목 (옮긴이) | 비룡소 | 2006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근심하나없는 떠돌이 멋진 피리 하나 들고서 언제나 웃고 다니지 쿵작작 쿵작~~"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인생의 첫 노래는 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였다. 하멜른의 유명한 전설을 책으로 옮긴 것이 있다는 걸 알기도 전에 내게 있어 피리부는 사나이는 "근심하나없는 떠돌이", "멋진 피리 하나"만 있다면 언제나 홀로인 것을 감내한 채 웃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사내였다. 노래가 날 선택한 것이었을까? 내가 노래를 선택한 것이었을까?


비록
어렸을 무렵이라지만 그 때 노래란 것이 저것 하나만 있었을리 없건만, 유독 기억에 남고, 어린 시절에도 즐겨 따라 부르던 노래가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근심 하나 없는 떠돌이"하는 노래였다는 건 필경 내 안에 유랑하는 피가 있어서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해버렸다. 내가 가장 되고 싶어하는 존재는 에뜨랑제, 보헤미안, 뭐 요새 유행하는 노마드니 그런 말로 표현되기 보다는 그저 떠돌이, 장돌뱅이 같은 존재였다. 부초처럼 어디든 얽매임 없이 마음대로 떠돌 수 있다면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하는 소원을 품었던 것이 내 나이 일곱 살 때의 일이라면 너무 이른 소원이었을까.


그런
소원 뒤에 나는 두 번째 "피리부는 사나이"를 만났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였다. 송창식의 영향 탓이었을까? 이 동화 혹은 민담, 전설은 나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고, 어찌보면 잔인한 교훈을 담고 있으며, 어찌보면 괴기스러운 이 이야기는 내 인상에 여러 차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인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로버트 브라우닝과 케이트 그린어웨이 판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읽었던 건 아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엔 명확하게 누가 저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림 형제가 이 이야기를 채록했다고 해서 이것이 그림 형제의 작품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이야기는 그저 하멜른 지방을 떠돌던 전설에 불과하다. 그것을 그림 형제가 채록하고, 다시 로버트 브라우닝이 글로 정리하고, 거기에 케이트 그린어웨이가 삽화를 그려넣어 지금의 이 책을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수많은 판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이 책을 정본이라 생각한다. 워낙 로버트 브라우닝과 케이트 그린어웨이 솜씨가 결정판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내가 읽었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선 그저 하멜른에 출몰한 쥐떼를 묘하게 생긴 고깔 모자를 쓴 피리 부는 사내가 피리를 불어 몯 퇴치해주었는데, 하멜른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피리 부는 사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그저 그런 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1987년을 경험한 뒤 다시 읽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로버트 브라우닝의 이 이야기 가운데 내 눈시울을 젖게 만든 대목은, 작가가 직접 윌리에게 말해주는 부분이었다.


"아, 아이들이 언덕 기슭에 다다랐을 때에, 갑자기 굴이 뚫리는 것처럼 언덕이 활짝 열리는 게 아닙니까! 피리 부는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자 아이들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맨 뒤에 선 아이까지 모두 다 들어가자 갈라진 언덕은 재빨리 닫혔습니다.

다 들어갔을까요? 아닙니다! 한 아이는 절름발이여서 춤을 추며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도록 절름발이 아이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다면, 절름발이 아이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소꿉 친구들이 떠나고 나서 우리 마을은 아무 재미도 없어졌어요! 이젠 사라져 버렸지만 난 잊을 수가 없어요. 피리 부는 아저씨가 우리에게 보여 주겠다던 그 즐거운 곳을.
피리 부는 아저씨가 우리 마을 이웃에 있는 즐거운 나라로, 맑은 물 흐르고 과일 나무 자라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겠다고 했거든요. 거기서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지요. 꽃도 더 고운 색으로 피어나고, 참새도 우리 마을 공작보다 화려하고, 사슴도 우리 마을 사슴보다 빠르고, 꿀벌은 독침이 없고, 말은 독수리 날개를 달고 태어난답니다. 나는 언덕 밖으로 밀려나 있었고, 엉겁결에 나만 혼자 마을에 남아서 전처럼 절뚝거리며 다녔지요. 그후로 다시는 그 나라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요.”
그러니 윌리야.
너와 나는 사람들의 상처를 다독거려 주는 사람이 되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리를 불어 쥐를 쫓아주겠다고 하든 안하든 우리가 약속한 것이 있다면, 그 약속을 꼭 지키자."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자라는 동안 나의 부모는 과연 내가 어떤 아이로 자라날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문득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 터닝 포인트라 할 만한 어떤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 내 앞에서, 하멜른 소년, 소녀를 뒤쫓던 윌리 앞에서 그러했듯 동굴 문이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을 받은 순간도 있었다. ‘삶이란 얼마간의 굴욕을 지불’해야 거쳐갈 수 있다. 어느 한 시기를 살아낸 뒤, 어느날 갑자기 기성 세대가 되어 있는 날 발견한다. 내가 너무나 옳다고 믿었던, 그래서 거창하게 목숨을 걸기도 했던 그 무엇이 어느날 갑자기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마치 전광판의 화면 바뀌듯 연대의 해방 공간은 순식간에 단절이란 고립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내가 변하고 네가 변하여서 세상을 바꾸자던 공공연한 약속들이 깃발이 되고 구호가 되었던 시대에서 이제 어떤 친구들은 내게 그래도 당신은 다행이지 않은가, 여기 비명 한 번 못 질러보고 시드는 청춘도 허다하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마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나섰다가 다리를 절룩거렸던 탓에 유일하게 그 문 앞에 홀로 서게 된 윌리처럼 ... 어느 순간 나는 그런 절망감에 사로잡혔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나는 김수영의 싯귀가 떠올랐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홀로
남았다는... 고독....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내가 자기동일시를 이루었던 대상은 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아니라 홀로 남은 절름발이 윌리였음을 깨닫고 나는 많이 울었다... 피리 부는 아저씨가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던 유토피아의 이상이 사라진 탓이 아니었다. 그저 홀로 남았다는 것, 전장에서 혼자 생환한 듯한 절망감이 나로 하여금 한동안 가슴 먹먹하게 만들었다. "도옹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