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ESY/외국시

안나 아흐마또바 - 이별

이별

- 안나 아흐마또바
(Anna Akhmatova, 1889-1966)


내 앞에는
저녁의 비스듬한 길이 놓여 있네
어제는 사랑에 빠진 채
"잊지 말아요" 속삭이던 사람
오늘은 다만 바람소리뿐
목동들의 외침과
맑은 샘가의
훤칠한 잣나무뿐


*

어제는 사랑에 빠져 행복했던 사람
그 사람이 사라진 뒤의 나에겐 저녁의 비스듬한 길이 있을 뿐이다.
사랑은 '침묵'이 아니라 '대화'로 이루어진 탓에 사랑은 말의 연금술사이자 말의 포로가 된다. 그러나 비스듬한 길을 걸어 나조차 사라진 뒤에도, 모든 말들이 허공으로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맑은 샘가의 훤칠한 잣나무는 남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