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꿈꾸는 것처럼
- 허수경
너의 마음 곁에 나의 마음이 눕는다
만일 병가를 낼 수 있다면
인생이 아무려나 병가를 낼 수 있으려고……,
그러나 바퀴마저 그러나 너에게 나를
그러나 어리숙함이여
햇살은 술이었는가
대마잎을 말아 피던 기억이 왠지 봄햇살 속엔 있어
내 마음 곁에 누운 너의 마음도 내게 묻는다
무엇 때문에 넌 내 곁에 누웠지? 네가 좋으니까, 믿겠니?
내 마음아 이제 갈 때가 되었다네
마음끼리 살 섞는 방법은 없을까
조사는 쌀 구하러 저자로 내려오고 루핑집 낮잠자는 여자여 마침 봄이라서 화월지풍에 여자는 아픈데
조사야 쌀 한줌 줄테니 내게 그 몸을 내줄라우
네 마음은 이미 떠났니?
내 마음아, 너도 진정 가는 거니?
돌아가 밥을 한솥 해놓고 솥을 허벅지에 끼고 먹고 싶다 마치 꿈처럼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
*
허수경의 시 중에 가장 좋은 것들은 어떻게 쓰인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꿈결에 쓰인 것처럼, 혹은 취한 것처럼 그렇게 도통 말을 붙일 수가 없다. 시를 읽노라니 같이 귀신에 씌인 것처럼 허우적대며 시만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도통한 사람처럼 웃거나 울거나 멍해져서 앉아있게 된다. 물론 허수경의 모든 시가 그렇지는 않지만 이 시는 그렇다.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
마음을 놓으면
마음을 놓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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