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위기와 지도자의 착각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지난 2월13일 북한은 경고했던 대로 핵실험을 실시했다. 공식적인 실험만 3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음에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모 화장품회사의 경품이벤트에 대한 내용이 차지했다. 몇몇 보수언론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젊은 네티즌들의 안보불감증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토해냈다. 그러나 다음날 발표된 한국의 주식시장동향을 보면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주식투자자들 역시 북한 핵실험을 한국경제의 불안요소로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계 주요 주식시장 시세가 하락세였음에도 한국주식시장만 유일하게 상승세였던 것을 보면 말이다.
1991년 노태우정부 시절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했고, 1992년 북한은 영변핵시설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하는 대신 미국의 평화보장을 요구했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 든든한 우방국들을 상실한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로의 편입만이 고립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북한정권의 붕괴가능성을 섣부르게 예측한 미국과 좀더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고자 했던 북한은 미국이 요구한 영변핵시설 정밀사찰을 거부하고, 1993년3월 핵무기방지조약NPT 탈퇴를 공표하였다. 이후 북미관계가 강경해지면서 남북관계 역시 냉랭해져 갔고, 그 결과 최초의 핵위기가 발생한지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에 이르는 4명의 대통령이 임기를 마쳤고, 북한 역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체제로 이어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우려와 반대로 인해 지난 5년간 우리는 북한과 실질적인 대화를 거의 진전시키지 못했다. 그 기간 한국(의 정당 혹은 정치집단)은 UN을 비롯해 온갖 제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핵개발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북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 사이 우리는 한반도 운명을 놓고 UN과 미국, 중국, 일본에게 북한에 대한 제재를 요구해왔을 뿐이고, 우리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대부분은 그저 국내용에 그치고 말았다.
위기앞에서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도 정치의 책무이긴 하겠지만 북한이 공개적으로 3차례나 핵실험을 하는 동안 우리 언론이나 정치에서 북한은 마치 신기루이거나 허깨비처럼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점점 더 공허하고 텅빈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북한이란 집단은 어차피 우리가 무슨 짓,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소용없다고 지레 포기해 버린 인상마저 받는다. 그러면서도 다른한편으론 북한 전역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순항미사일의 조속한 배치만으로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과연 그것만으로 이 사태에 대처할 수 있을까?
클린턴 대통령 집권시절 영변핵시설에 대한 폭격계획이 수립되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북한 핵시설 폭격계획은 아무리 뛰어난 정밀타격 능력을 갖춘 미국이라도 북한 핵관련시설을 모두 찾아낼 수 없고, 설령 찾아낸다 하더라도 지하에 숨겨진 핵시설을 파괴하기 어려우며 공습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과 북한의 보복공격의 위험성을 우려해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결국 취소됐다는 사실은 그보다 덜 알려져 있다. 한때 폭격계획을 만류했던 것으로 자랑하던 김영삼 전대통령은 이제 그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고, 내일 모레면 퇴임할 이명박 대통령은 남한도 핵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을 표하면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하느라 예산을 탕진한다면 곧 붕괴하게 될 거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지난 5년간 아무런 실효도 거두지 못한 채 입으로만 강경했던 대북정책 사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국민들은 그저 화장품세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오랫동안 20세기의 전쟁원인을 연구해온 존 G. 스토신저 교수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적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이 충분히 강력하고 길게 이어지면, 그 인식은 결국 사실이 된다. 위기상황에서 힘에 대한 인식은 특히 중요하다. 초기단계에서 지도자들은 자국의 힘은 과장하고 적국은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지도자들이 그런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전쟁보다 평화를 지키는 것에 더 큰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http://news.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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