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주석 만세” 낯설지 않은 외침
- <중국인 이야기 1>/리쿤우·필리프 오티에 지음/한선예 옮김/아름드리미디어 펴냄
내게는 중국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두 가지 있다.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한 시민단체를 취재하다 우연히 한 선배를 만났는데
1989년 중국의 톈안먼 사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선배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공산당의 결정을 이해한다며 어쩔 수 없지
않았느냐고 했다. 한마디로 시위 군중들이 우경화되었으므로 체제 수호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와 할 이야기가
없었다. 다른 하나는 2007년의 일이다. 중국 광저우에 갔다가 쑨원(孫文)을 기리는 중산기념당에 들렀다. 기념품 가게에는 여느
관광지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물품이 대부분이었는데, 유일하게 붉은색 비닐 장정의 책 한 권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오주석어록(毛主席語錄)>이었다. 함께 간 조선족 가이드에게 구입할 수 있도록 통역을 부탁했더니 왜 저런 책을 사려
하느냐며 이제 공산당이고 마오고 진저리가 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냉전 시대, 한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해 있었지만 20세기 아시아의 신생국가로 각기 다른 방식의 근대화를 추진해왔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군사 쿠데타와 민주항쟁을 거친 우리에게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개혁개방 시대를 살아온 저들에게도 이
시기는 격동의 시대였다. <중국인 이야기1-아버지의 시대>는 수십 년간 국가와 당의 선전 업무에 종사해온 국가 공식
화가이자 현재 중국공산당 당원이기도 한 리쿤우(李昆武)가 자신의 삶을 통해 격동하는 중국 현대사의 현장을 생생히 담아낸 자전적인
만화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인 친구 필리프 오티에의 도움을 받아 4년여의 작업 끝에 <중국인 이야기> 3부작을
완성했는데, 여기에 소개하는 제1권은 자신이 태어난 1955년부터 마오쩌둥이 죽은 1976년까지를 다룬다.
아직 젖먹이인 아들에게 ‘엄마, 아빠’ 대신 “마오 주석 만세”를 먼저 해보라고 시킬 정도로 열성적이었던 공산당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주인공 샤오리가 맞닥뜨린 첫 번째 사건은 대약진운동(1958~1962)이었다. 그는 이 시절을 “며칠 전 시작된 어떤
운동으로 온 나라가 도취에 가까운 흥분 상태”에 휩싸인 시기로 기억한다. 한순간에 모든 형태의 사생활이 사라지고, 공동식당에서
모두 함께 밥을 먹고, 온 나라의 쇠붙이를 거둬 용광로에 녹이고, 용광로를 달굴 석탄이 떨어지자 온 산의 나무들을 베어냈다. 마오
주석의 한마디에 중국 인민들은 파리·모기·쥐·참새를 박멸하겠다며 산과 들판을 누볐다. 그러나 나무를 베어내고 참새를 없앤 여파로
땅이 황폐해지고, 해충이 창궐하는 바람에 3년여 흉년 동안 10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굶어죽는 대기근이 벌어진다.
ⓒ북폴리오 제공
<중국인 이야기 1>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시기를 다룬다. 1966년 9월12일 홍위병이 하얼빈 시장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있다(위). |
그들과 우리의 역사가 겹치는 시절
몇 년 뒤 열한 살이 된 샤오리는 친구들과 함께 <마오어록>을 손에 들고 식당, 사진관, 목욕탕, 미용실 등을 돌며 문화대혁명(1966~1976)에 참여한다. 이들은 더 나아가 학교 선생님들을 고발하고, 자아비판에 끌고 나와 욕보인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의 광기는 샤오리와 그 친구들도 피해가지 못했다. 같은 반 친구의 폭로로 지주 집안 출신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버지는 공산당에서 쫓겨나 어디론가 잡혀가고 집안은 몰락한다. 그런데 죽(竹)의 장막 저 편에 가려져 있던 중국의 시대 상황이 내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어린 샤오리가 과제로 쥐를 잡아 꼬리를 학교로 가져가는 모습이 낯설지 않고, 거리 곳곳, 건물마다 온갖 구호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모습이 낯설지 않으며, 아침 일찍 학교 갈 때 동사무소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가 낯설지 않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역사가 우리 역사의 어느 시절들과 겹쳐지는 이 시절에.<2013-02-02>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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