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몇 차례 말한 바 있지만 미국의 무력 과시보다 두려운 것이 나로서는 현재
중국의 침묵이다. 중국이 무서운 이유는 그들의 무력이나 경제력, 외교력 보다 미국과 중국이란 힘센 두 나라의 암묵적 동맹시스셈의
성립이 한반도 평화에는 더 큰 위협이 되어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미국은 호주, 일본, 한국, 필리핀 해군 등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태평양 해상 작전 훈련인 림팩에서 중국을 배제해 왔는데, 중국은 이에 대해
대중국 봉쇄 훈련이라며 강하게 항의해 왔다. 그런데 2년마다 한 번씩 전개되는 림팩 훈련에 내년부터 중국도 참여하기로 되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중국은 또한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채무국으로서 미국 국채를 1조 달러 이상 소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 동서 냉전적 사고 아래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마치 미소간의 양대 블럭처럼
서로 적대적인 경쟁관계일 것으로 은연 중 예상하기 쉽지만 좀더 다른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영국의 패권이 미국이란 또다른 동맹국가로 승계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미중, 중미간 동맹체제의
수립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미소 관계가 초나라와 한나라로 갈려서 서로의 궁(宮)을 노리는
장기로서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다면, 미중관계는 장기가 아니라 바둑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소간이 치열한 대결에
의한 패권다툼이었다면 미중간에는 싸움바둑과 집바둑이 혼용되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진영 사이에서 서로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패라고 생각하며 저울질하는 동안 판세가 아주 다른 방향으로 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중 양강의 대립 속에 어부지리라도 얻겠다는 판에 박힌 외교적 인식만으로는 큰 패착을 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예전에 미국과 일본의 빅딜(가쓰라 - 태프트 밀약)에 농락당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리영희 선생이 생존해 계실 때 이미 중국과 미국이 대만과 북한을 서로 딜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바도 있지만).
강자에겐 써먹을 수 있는 패가 많지만 약자에겐 제시할 수 있는 패가 많지 않은 법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평화 수호 의지가 중요하다. 잘못하면 만패불청(萬覇不聽:매우 큰 패가 나서 상대가 어떤 팻감을 써도 듣지 않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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