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니 "‘헌정질서 파괴 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은 내란죄의 경우 공소시효를 두고 있지 않다. 내란음모죄가 인정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에 처해진다"고 되어 있더라.
그러므로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공소시효가 없는 범죄에 대한 고백으로서 처벌을 감수(?)하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5~6년 전인 1987년 4~5월의 어느 따뜻한 봄날,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D고교의 교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운동장에선 이제 막 점심 도시락을 까먹은 학우들이 공을 차고, 놀거나 운동장 구석에서 산보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 LSY군과 함께 점심 시간을 기해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며 시국에 대한 한탄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 녀석이 '그날이 오면'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다짜고짜 그날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누구나 그날이 어떤 날인지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나오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다미르'처럼
아직 오지 않은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은 갑자기 목소리를 나직하게 깔더니, 자기는 '그날이
오면 예비군 무기고를 털겠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정말? 미친 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날'이
오면 정말 그래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내 은사 중 한 분은 나를 가리켜 '광주가 키운 마지막 아이'라고
하셨는데, 어찌보면 맞는 말씀이었다.
1980년 광주의 경험으로부터 채 10년도 경과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자라던 우리에게 '광주'란 지명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 그 지명은 한 편에선 학살의 이름이었고, 다른 한 편에선 반란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겐 '민주주의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그날'만큼 멀고, 언제올지 알 수도
없는 대상이었다.
광주에 대한 기억은 한편에선 국민이 국가(더 정확하게 말하면 국가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에게
자위권을 발동해 무기를 들고 항거한 기억이자 국가가 국민을 학살한 기억이기도 했다. '아, 그날이 그날이라면...' 이란 생각이
들자. 당시 17살이었던 나는 그에게 섣부른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날이 오면 나도 함께 할께."
이렇게 해서 나와 그 친구는 내란음모죄라는 공소시효도 없는 중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1987년의 찬란한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우리는 그런 중대한 범죄음모를 꾸몄다. 어차피 시위나 데모는
고등학생인 우리에겐 이방인처럼 먼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해 6월이 지나고, 6.29선언이 있었다. 도저히 올 것 같지 않았던
'그날'이 도둑처럼 와버렸고, 우리의 무기고 탈취계획은 대신 그해 연말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비록 선거권은 없지만 '공정한
대통령선거와 교육민주화를 주장하는 농성시위'를 통해 참여하자는 계획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해서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그해 연말 명동성당의 콘크리트 바닥에서 서울지역고등학생운동협의회(나중에 연합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란 이름으로
농성시위를 치렀다. 결과는 허무했다. 그날은 올듯말듯 하다가 문턱에서 물러갔고, 우리는 그날이 오긴 온 건지, 아예 오지 않은
건지, 아예 올 수 없는 건지, 오지 않을 건지를 기다리며 10년, 다시 20년을 지나보냈고,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공장, 공사판을 전전하다가 대학에 들어갔고, 나랑 함께 내란을 음모했던 친구는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어쩌면 내가 일부러 찾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듬해였던 1988년의 어느날 성당에서 신부님이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란 말씀으로 미사를 끝마쳤고, 나는 성당 문을 막 나서던 찰나였다.
덩치가 곰만한 사내 두 사람이 문 앞에 서 있다가 아무 생각 없이 걸어나오는 내 배를 주먹으로 힘차게 쳤다. 아픈 건 둘째고 숨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나동그라졌는데, 앞에 서 있던 형사가 말했다. "네가 전성원이지?" 나는 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 LSY라고 알지?"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너! 걔가 월북한 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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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는 아직도 한밤중이었다. 하지만, 꿈이 너무 실감나고 무서워서 그 뒤로 아침이 될 때까지 뜬눈으로
지새웠다. 이건 괜히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자고 꾸민 것이 아니라 실화다. 나는 정말 그런 꿈을 꿨다. 다음날 학교에 나가
LSY에게 가봤더니 멀쩡하게 학교에 나와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있다.
내란을 음모했던
탓인지 몰라도 학교 교련수업 시간 중 실시되었던 M1소총 분해결합시험에서 1등을 했다.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것인지, 특전사 대위 출신으로 우리 학교 교련 선생으로 있던 이른바 '람보' 선생의 훈육 탓인지는 모르겠다. 들리는
풍문으로는 교련 과목이 폐지된 뒤로 그 선생님은 다른 과목을 가르치고 계시다고 한다. 어쨌든 체 게바라, 보구엔지압의 게릴라 전술
같은 책들을 한동안 열심히 탐독하거나 '스페인내전사연구' 같은 책들도 꽤 열심히 읽었다. 물론 이것이 내란을 음모하기 위해
그랬던 것인지 그때부터 이미 밀덕후의 자질이 싹튼 탓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이 이석기나 통합진보당 때문에
쓰는 글이란 오해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 글은 그날이 오길 바랐으나 오지 않은 그날을 회상하며 쓰는 나의 자술서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공소시효도 없는 범죄에 대한 나의 자술서니까...
* 만약 그때 내가 잘못되었더라면 이런 사진으로 나를 기억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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