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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

낸 골딘(Nan Goldin) 나는 조금 전 긴 복도에서 소독약 뿌리는 사내와 마주쳤다. 그는 긴 복도 회랑에 양철 소독통을 들고 복도의 양 옆 벽에 무색의 소독약을 뿌리며 나와 지나쳤다. 나는 이 글을 씀으로써 그를 잠시동안 기억하겠지만 그는 영국식 검은 군용 스웨터에 짙은 회색 목도리를 칭칭 감고 스쳐간 나를 아마도, 아마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 몇 해전부터 열화당에서 새로운 사진집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 시리즈로 열 권의 사진집 중 도로시아 랭과 유진 스미스, 가브리엘레 바질리코 등의 사진집을 새로 출간했다. 포장을 뜯고 집에 들고 가서 읽었다. 옛날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에 비해서는 월등히 뛰어난 인쇄 질과 판형, 그리고 자세한 캡션들, 비평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인쇄잉크 냄새를 킁킁 맡으며 나는 신간들이.. 더보기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1863-1928)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1863-1928) 자화상 - 아뜰리에, 1905, 베를린국립미술관 독일 화가, 조각가이며 판화가, 바이에른의 테텐바이스 태생. 뮌헨에서 공부하였으며 1893년 뮌헨 분리파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1895년 뮌헨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고, 그곳에서 칸딘스키, 클레를 가르쳤다. 슈투크는 또한 베를린, 드레스텐, 스톡홀름, 밀라노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이었다. 19세기 말에는 아르 누보, 즉 유겐트슈틸 운동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으며, 뮌헨의 자택을 통해 유겐트슈틸의 총체예술(Gesamtkunstwerk)에 대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장식적이고 평평한 색채를 사용해 그림의 분위기를 조절한 것은 어느 정도 후대의 발전을 예시하는 것이다. 슈.. 더보기
후배편집자 편집자 - 나의 동료 "쭈발이" 더보기
대문 - 2000.08.01. 첫 대문 처음 인터넷에 홈페이지란 것을 만들 생각을 했을 무렵의 나는 HTML은 커녕, GIF, JPG란 용어는 몰랐다. 내가 아는 건 오로지 HWP파일뿐이었다. 무턱대고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네이버에서 계정을 받았고, 당시 홈페이지는 네이버에서(현재 블로그가 그런 것처럼) 여러 이미지들 가운데 선택하여 메인 이미지로 만들 수가 있었는데, 이 그림이 내가 맨처음 올렸던 그림이다. 당시엔 이 그림 속의 소년이 어린 시절의 나와 가장 닮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지금 다시 보면 정말 어렸을 적의 나와 일부는 닮았을 수도 있었단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난 저렇게 웃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쨌거나 문화망명지의 첫 타이틀 롤을 맡았던 이미지다. 더보기
부도덕한(?) 진보주의자의 불온한 욕망과 예술 - 최경태 2001년 5월 30일, 최경태는 ‘여고생-포르노그라피2'란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다가 결국 이 문제로 6월 2일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검찰에 고발되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은 “단순한 누드가 아니고, 여고생의 오랄 등 보는 이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는 판결문과 함께 화가에게 벌금 200만원, 음화로 지목된 작품 31점의 압류 소각 결정이 내려졌다. 2002년 8월 음화 전시판매, 음란문서 제조 교사 판매 반포죄가 적용되었고, 대법원 상고는 기각되었다. 2003년 01월 03일 오후 01시. 여고생 그림(음화) 31점 압류 집행, 소각예정, 종로경찰서 형사 4명이 충북 음성 작업실 겸 집을 방문. 눈이 이렇게 오는데 ... 자식들을 보내자니 마음이 아픕니다. 나 혼자 ... .. 더보기
나치선전예술가 - 아르노 브레커(Arno Breker) 아르노 브레커(Arno Breker, 1900-1991, 독일) 아르노 브레커(Arno Breker) - 플로라(Flora) 아르노 브레커의 조각 라는 작품이다. 그냥 이렇게만 보면 그저 그런 조각들 중 하나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아르노 브레커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나면 그저 심상하게 보일까? 아르노 브레커는 프랑스의 조각가. 아리스티드 마이욜(Aristide Maillol)을 존경했다. 그는 1943년 아리스티드 마이욜의 고향 바닐로스(Banyuls-sur-Mer)를 찾아가 그의 모습을 조각하기도 했다. 만약 이 시기가 독일과 프랑스가 평화로왔던 그런 시대였다면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 조각가의 모습을 조각하는 후배 조작가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에 남겨진 아리스티드 마이욜.. 더보기
마야 린(Maya Lin) - "베트남전 참전 추모비 The Wall, 1982" 전쟁을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인류 공동체의 커다란 숙제입니다. 우리는 동족끼리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전쟁을 기념하는 "전쟁기념관"을 용산에 건립했습니다. 죽은 이들을 기리고, 희생을 추모하는, 그것을 기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인정하는 공동체 최상층부에 존재하는 국가차원에서 희생자의 추도와 화해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정부의 의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교보문고 옆 촛불 시위 장소의 기념비가 공권력에 의해 임의로 철거되는 사태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국가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추모를 통제하려 듭니다. 그것은 이런 희생에 대한 상징성을 국가가 독점하고 통제하려 드는 탓입니다. 마야 린(Maya Lin)의 "베트남전 참전 추모비 The..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