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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문학

조태일 - 국토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창비시선 중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중 하나는 조태일 선생의 "국토"가 아닐까 싶다.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비닐 커버가 달린, 판권란 밑에 박힌 정가는 500원이었던 그의 시집. 사실 조태일의 시는 지사적 풍모와 선굵은 활동 탓에 오랫동안 남성적인 시세계를 가진 것으로만 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 시인의 시세계와 삶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를 대표하는 연작시로 손꼽히는 "國土""식칼論" 등은 그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을 좀더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식칼론 2
―허약한 詩人의 턱 밑에다가


뼉다귀와 살도 없이 혼도 없이
너희가 뱉는 천 마디의 말들을
단 한 방울의 눈물로 쓰러뜨리고
앞질러 당당히 걷는 내 얼굴은
굳센 짝사랑으로 얼룩져 있고
미움으로도 얼룩져 있고


버려진 골목 어귀
허술하게 놓인 휴지의 귀퉁이에서나
맥없이 우는 세월이나 딛고서
파리똥이나 쑤시고 자르는


너희의 녹슨 여러 칼을
꺾어 버리며 내 단 한 칼은
후회함이 없을 앞선 심장 안에서
말을 갈고 자르고
그것의 땀도 갈고 자르며
늘 뜬 눈으로 있다
그 날카로움으로 있다.


<전문>
언젠가 시인 김수영에 대해 말하면서 "시인은 말로 산다. 좀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언어로 살아간다. 태초에 말씀이 있어서 가장 즐거웠던 이들은 어쩌면 시인들이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조태일에게 있어 "말"들은 '너희'라는 타자화된 외부로부터 오는 무수한 폭력의 다른 형태(異形態)들이거나 그 자체로 폭력의 도구인 "녹슨 여러 칼"이다. "허약한 詩人의 턱 밑에" 겨누어진 죽음과 폭력 앞에서 시인은 "말"을 갈고 자르며 늘 뜬 눈으로 날카롭게 깨어 있다. "식칼론2 "에서 시인은 외부의 무수한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단호해진다. 단호해진 만큼 그의 시는 경직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천 마디의 말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한 방울의 눈물"이며, 불의와 폭력에 대한 시인의 미움은 정의와 생명에 대한 짝사랑과 한 몸을 이룬다.

내가 뿌리는 씨앗은
―國土•42

모든 맹렬한 싸움은 끝났다.
이 고요하고 고요한 시간에
가릴 것은 가리고, 버릴 것은 버려야지.


사람아, 사람아, 떠나가라.
나로부터 떠나가라.
내가 딛는 땅도 내가 받는 밥상도
떠나가라 떠나가라.


그리하여 혼만 남고 내 육체도
내가 걸치는 옷도 땀도 때도
손톱도 발톱도 털도 떠나가라.


산과 하늘이 마주 닿는
저 파아란 地平의 저 넘치는 뜨락에는
마음놓고 뿌릴 수 있는 品種이란
내 혼의 씨앗이어라
산간벽지 호젓한 개울물로 씻은
내 혼의 씨앗이어라.


사람아 사람아
모든 맹렬한 싸움은 끝났지만
최후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남아 있다.

아아! 그것은 죽는 일인데
죽어서 다시 깨어나는 일인데
아아! 그것은 씨앗을 뿌리는 일인데
우리들은 아직 혼을 찾지 못했는데


산과 하늘이 마주 닿는
저 파아란 地平과 뜨락만 넘쳐나네라.


<전문>

마하트마 간디는 "삶은 죽음에서 싹튼다. 보리가 싹트기 위해서는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시인은 "모든 맹렬한 싸움은 끝났다"고 말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시인의 "국토" 연작은 1971년 "창작과비평" 여름호(통권21호)에 "국토2"를 담아내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 (이 연작 시는 내 나이만큼 오랜 연륜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다 이때 이야기하는 모든 맹렬한 싸움이란 무엇이었을까? 글쎄, 그것은 시인이 평생을 걸고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이었을 게다. 다만 시인은 5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맹렬한 싸움은 끝났지만 최후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남아 있다"고. 그것은 "씨앗을 뿌리는 일", 죽음을 통해 그로부터 부활하여 우리들의 "혼"을 되찾는 일이다.

생전에 시인은 스스로를 '일국의 시인'이라 이야기했고, 어떤 이들에게는 '국토 시인',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그의 이름을  우스개로 만들어 'X털' 시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등진 것이 지난 1999년의 일이다. 시인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이르는 시창작 강의에서 "자연은 뭇 생명들의 근원지이며 원형이며 모태이다. 뭇 생명들의 총체이자 본질"이라고 가르쳤다. 인간 역시 이러한 큰 생명체에서 뻗어나온 가지이므로 자연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시는 자연의 본질을 드러내는, 자연과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그러므로 시란 "생명의 노래"이자, "생명의 발현이고 소망"이라고 말했다.


자연과 생명과 시는 시인에게 삼위일체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렇듯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고 소망한 시인이 살아야 했던 시대는 이 삼위일체가 평화롭게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시대였다. 생명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 중 하나는 시인이 노래했던 "최후로 이길 수 있는 싸움"처럼 혹은 그의 시 "풀씨"에서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 / 그곳이 나의 고향 / 그곳에 묻히리." <조태일, 풀씨, 시집 "풀꽃은 꺽이지 않는다" 중에서>에서 처럼 "죽음"이다. 삶과 죽음, 생명과 죽음은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통효(通曉)하는 조화로운 관계이다. 그러므로 삶과 생명의 반대말은 "죽음"이 아니라 "죽임"이다. 그러나 잔인한 시대는 풀씨들의 삶을 꺽고, 생명을 꺽는다. 

시인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말한다. "단 한 칼"의 말을 위해 "심장 안에서 / 말을 갈고 자르고" 그리고 다른 시인의 말을 살려내기 위해(1977년 양성우 시집 『겨울공화국』 발간 사건에 연루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고은 시인과 함께 투옥돼 옥고를 치른다) 온몸으로 실천(그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임시총회와 관련 계엄법 및 포고령 위반으로 시인 신경림 , 문학평론가 구중서 등과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다. 작고 여린 생명을 거두기 위해 그의 시는 밖으로는 단호하고, 단단하였으나 안으로는 누구보다 따스한 체온과 부드러움을 함께 지녔다.

살아생전 5.18유공자 신청을 거부했던 시인이지만 그의 사후인 지난 2005년 5월, 평소 그를 알고 사랑해왔던 시인 김준태, 박석무 5.18기념재단 이사장 등의 노력으로 국립5.18묘지로 이장했다. 그리고 그의 타계7주기를 맞아 오는 2006년 9월 9일부터 그의 고향인 전남 곡성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에서는 "죽형 조태일 문학축전"을 개최한다고 한다. 당신이 노래한 것처럼 "매운 찬바람 속에서도 / 이제 삶을 죽음이라 / 죽음을 삶이라 말하며 // 밟힐수록 힘이 솟는 우리들, / 타오르는 태양 아래서 / 끼리끼리 그림자 만들어 / 마침내 더불어 큰 산 이루었네."<조태일, 겨울보리, 시집 "풀꽃은 꺽이지 않는다" 중에서> 우리들은 정말 더불어 큰 산을 이루어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