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옹"이란 말은 별도로 정한 바 있는 접두사는 아니다. 그러나 "옹"이 붙는 표현들은 "옹골지다", "옹골차다"와 같은 형용사에서 볼 수 있듯 '실속이 있는 것', '내용이 충실한'과 같은 느낌과 뜻으로, "옹기옹기", "옹기종기" 등과 같은 부사에서 느낄 수 있듯 따듯한 정감이 느껴지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물론 "옹고집(壅固執)"이나 "옹졸하다(壅拙)"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도 없지는 않으나 그것 역시 악하거나 나쁜 느낌이기 보다는 민화에서 장난스럽게 표현되는 도깨비 같은 느낌이다.  이렇듯 우리 말표현에서 접두사 아닌 접두사처럼 사용되는 "옹"이란 말이 그릇으로서의 "옹기(甕器)"에서 비롯된 것인지 <옹고집전(雍固執傳)>과 같은 "옹"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고, 학술적으로 연원을 따져물을 재간은 없으나 나는 "옹기종기"와 같은 말들은 분명 우리네 실생활의 장독대 풍경 같은 것에서 유래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여기 옹고집이라면 옹고집장이고 옹골찬 옹기장이라면 옹기장이인 "이현배"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지금 전북 진안군 백운면 솔내마을에서 물이, 솔이, 바우 세 아이와 그 못지않게 씩씩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옹기의 역사에 대해 쓰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기 작품을 추어 올리기 위해 꾸며 쓴 글도 아니다. 그냥 흙냄새, 불 굽는 가마의 장작 타는 냄새, 그렇게 구워낸 옹기 그릇에 투박하게 끓여낸 토장국 냄새 물씬 나는 생활 글이다.

사서오경(四書五經) 중 사서의 하나인 "대학(大學)"에는 "명명덕(明明德:명덕을 밝히는 일) ·신민(新民: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 ·지지선(止至善:지선에 머무르는 일)"을 일컬어 대학의 3강령이라 하고, 이에 대한 실천적인 덕목을 여덟 개로 적어 "8조목(八條目)"이라 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역시 이의 8조목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이런 8조목의 가장 앞에 나오는 말이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다. 격물치지라 함은 "실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유교가  "사농공상"과 같은 봉건제적 경제 구조에 기반한 계급을 강요했거나 그에 따른 이데올로기였다는 비판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본디 유교적 가르침과는 달리 이용된 대목도 있으리란 생각을 대학의 "격물치지" 정신에서 느껴봤다. 

옹기장이 이현배는 3녀 2남의 막내로 태어나 먹을 것이 없으면 흙담을 뜯어먹는 가난함 속에 성장했다고 한다. 그와 흙의 인연은 어쩌면 그렇게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배가 고파서였을까 아니면 세속적인 출세, 성공에 목이 마른 탓이었을까. 그는 경희호텔전문대학을 나와 오늘날 부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척도로 보자면 분명 부러워할 만한 유명한 호텔에서 초콜릿을 만들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 1991년 돌연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온가족을 이끌고 고향 인근 시골마을로 낙향한 것은 다시금 흙을 만지기 위해서였다. 그는 전남과 경남을 넘나들며 옹기장이 선생들에게 옹기 빚는 법과 옹기 굽는 법을 배워 다시 솔내마을로 돌아와 오늘도 흙과 씨름하며 옹기를 굽는다.

우리가 흔히 옹기라고 부르는 그릇은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질그릇은 진흙만으로 반죽해 구운 후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기가 나지 않는 그릇이고, 오지그릇은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볕에 말리거나 약간 구운 위에 오짓물(유약)을 입혀 다시 구운 질그릇을 말한다. 삼국 시대부터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옹기는 전세계에서 우리 민족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음식 저장 용기로 옹기는 먼저 흙을 반죽해서 응달에서 말린 뒤에 떡매로 내려쳐 벽돌모양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바닥에 쳐서 판자모양의 타래미로 만든 뒤 타래미를 물레 위에 올려놓고(예전에는 발로 쳐서 돌렸었는데 요새는 기계를 이용해 돌린다.  그는 여전히 발로 쳐서  물레를 돌린다) 옹기를 빚어내는 것이다. 옹기의 모양은 물레의 속도와 옹기장이의 손놀림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네 생활과 땔래야 땔 수 없는 생활 그릇이었던 옹기가 어느날부턴가 플라스틱과 스테인레스, 법랑 그릇에 밀려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지 오래이다. 먹을 거리가 달라지고, 생활 습속이 달라진 탓이 제일 크겠지만, 우리가 주체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근대화(산업화)가 우리 전통의 것들을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여기게 했던 탓도 클 것이다. 정부에서는 지난 1989년부터 옹기장(옹기 만드는 기술자)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했지만 우리 본래의 장 담그기는 물론이요, 김장도 사라져 가는 요즈음의 분위기로 생활 속에 사라진 옹기를 부활시키는 것은 역부족일지도 모르겠다. 옹기의 장점이야 TV나 잡지와 같은 여러 매체에서 "숨쉬는 그릇"이니 "선조의 과학"이니 해서 많이들 부각시키긴 하지만 어쩐지 집안에 옹기그릇 하나 장만해 두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책의 저자 이현배 씨가 옹기장이로서 자신이 선택한 이런 삶의 방식에 대해, 혹은 여러가지 장점과 미덕을 담은 옹기에 위와 같은 찬사들을 늘어놓을 만한 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그런 식상한 주장들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옹기장이 이현배는 그가 매일 만지고 주무르고 밟고 있는 흙을 담은 사람이다. 그는 주장하지 않지만 그의 주장들은 우리 몰래 숨을 쉬는 옹기처럼, 우리가 잠든 사이 씨앗에 숨어 있는 새생명들을 움틔어내는 흙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격물치지"를 이야기했지만 세상의 진실 혹은 진리란 것을 찾아 무한히 탐구하는 길은 참으로 여러 갈래이다. 철학자들은 철학함으로, 글장이들은 글을 통해,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격물치지" 하지만 이현배 같은 "장이"들은 그가 하고 있는 생활 속의 작업들을 통해, 어찌 보면 류승완  감독이 영화 "아라한장풍대작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생활도인"들을 통해서도 진리는 구현된다. 이현배의 이 글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우리는 그를 볼 수 있고, 그가 만드는 혹은 옹기 그 자체의 장점을 소리 높여 주장하지 않지만 저절로 그가 만들어 낸 혹은 우리 주변에 퇴물처럼 놓여 있을 옹기 그릇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주목하게 되고, 주목해볼 것은 한 가지 일을 가지고 꾸준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파고드는 한 사람의 장인을 통해 우리가 우리네 삶에서 놓치고 갈 수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끔 손끝에서, 머리를 짜내 글을 쓰는 이들의 얄팍한 글재주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조미료 맛 나는 그런 글 말고 정말 오래 곰삭힌 그런 질박한 글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둘 만하다.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