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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권정생 - 애국자가 없는 세상

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출처 : 《녹색평론》 55호, 2000.11-12호

*

예전 어느 팝 가수가 그랬다지요. 서른 넘은 사람의 말은 믿지 말라고요. 요즘 현실을 돌아보면 굳이 나이를 서른으로 올리지 않더라도 그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 더 영악하고 야박하단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들이 만든 세상이 야박하게 변해버린 탓이겠지요. 굳이 젊은 친구들을 타박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의 실책은 잘 보면서도 자신의 이기심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는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권정생 선생님을 참 좋아합니다. 그 분이 절 알게 된다면 제게 야단을 치실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권정생 선생처럼 제가 마음으로부터 승복하여 야단을 맞을 수 있고, 야단을 쳐줄 어른이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야단칠 만하니까 야단치는 것이고, 저역시 혼날만 하니까 혼난다고 여길 테니 말입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 참 드물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기 때문입니다.

1919년 3.1만세운동의 33인 중 일제 36년을 거치며 끝까지 지조를 지킨 이가 드물고, 4.19세대로 훗날까지 독재와 타협하지 않은 이가 드물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 세력 가운데 현재까지 진보진영에 남아 있는 이들이 드문, 우리 역사는 어찌보면 변절과 타협의 역사였습니다. 지금 주목받는 젊은 논객들, 여전히 우리 시대의 그닐진 곳에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고 있는 활동가들에 대해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와 같은 학습효과의 탓이기도 하겠지요.

어쩌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냉소적이고, 회색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더이상 누군가를 존경했다가 실망하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권정생 선생님에 대해 우리는 존경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겠지요.

** 나라를 위해 일했고,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들의 인사청문회를 앞두면 유난히 권정생 선생의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란 시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