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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김소월 - 가는 길

가는 길

- 김소월

그렵다
말을 할 
하니 그려워

그냥 갈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져 산(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압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도라오라고 도라가쟈고
흘너도 년다라 흐릅듸다려*

({개벽} 40호, 1923.10)


*

흐릅디다려 : '흐릅니다그려'의 준말.

- 김소월의 시가 좋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이 조선인이기 때문에 그런지 모른다. 그 구질구질한 감정들.
뭔 설움이 그리도 많은지....시라는 것은 이렇게 감정에서 감정으로 흐르는 것인데도 우리가 받는 문학교육은 감정에서 감정으로 흐르는 솔직한 제 감정에 빠질 틈을 주지 않는다.

기승전결의 도치법이니 선정후경이니 선경후정이니 시적허용이니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 아니라도 시를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다.

그대가 누군가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떠나는 순간에나마 불쑥 던져 보았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고백해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도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 보았다면 이 시가 얼마나 아픈 시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시인 오규원은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실연당하면 대시인이 된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이 아프면 그만큼 많이 더 남을 사랑할 준비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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