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산
- 김지하
빈 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저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 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 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끊이지 않고, 하루에 시 한 편을 올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나치게 게으른 친구. 하제누리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었고(그가 <망명소식> 필자로 시 읽기를 전담해주기로 했었음), 그냥 나 자신이 시 읽기를 게을리 한지가 얼마동안이었는지 새삼 놀라서 다시 읽어보기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홈피의 컨텐츠들 태반은 사실 나 자신의 공부를 위한 것들이기도 하다. 요새 나는 조금씩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서버를 이전할 것이고, 그에 걸맞는 컨텐츠들을 갖추기 위해서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도를 닦고 있는 셈이다.
원래 보이지 않는 곳의 공부란 '주화입마'에 빠지기 쉽다. 김지하 시인에 대한 나의 생각도 그렇다. 그가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뜻은 아닐지라도 언제나 주목받는 생 속에 갇혀있는 시인이란 것은 대개 둘 중 하나가 되기 싶다.
하나는 랭보처럼 무기상인이 되어 떨치고 떠나거나 폴 클로델(이 사람은 로댕의 연인이자 여성조각가 까미유 클로델의 동생이자 시인이다.) 처럼 식민지 전쟁을 찬동하는 반동적인 우를 범하기 쉽다. 사람들이 김지하 시인을 받들었던 이유는 김지하란 한 인물이 뛰어난 탓도 있지만 그가 필요한 시기에 옳은 말을 했기 때문이었지, 그가 하는 말마다 옳았고 예언자로 활동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는 말마다 매번 옳다보면 이런 착각을 하게 된다.
"내가 하는 말이 옳다"라고...
그래서 아무 말이나 하다보면 틀린 말임에도 번복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죽음의 굿판을 때려 치우라"고 한 말은 그래서 그에게 뼈아픈 상처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의 육성이 그의 시처럼 낭랑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그의 육신이 얼마나 가벼워 보이는지도 안다. 그리고 가슴 아픈 것은 시대는 간혹 한 인간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한다.
우리가 김지하를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 까닭은 그의 시가 너무나 탁월하다는 이유보다는 그가 짊어졌던 시대의 짐이 너무 무거웠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대한 시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시인 김지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래서 가슴아프고, 슬프다.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줄 몰라라"라고 노래하는 시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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