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라 친구여
- 김재진
오래오래 힘든 이 세상도
살아라 친구여
참담히 눈물 마른 들판 질러
강인 듯 기적소리 하나 흘러가고
서른을 넘겨버린 빈 날들 모아
쭉정이처럼 후후 날리며
살아라 친구여 살아라 친구여
죽자고 일하던 사람들 돌아와
새벽을 기다리던 어둠 속에서
새벽이 오면 무엇하랴
풀 끝에 맺힐 이슬 아예 시들고
굴러서 깨어질 빛의 파편만
남은 일의 무게에 눌려 눈 시린데
희망을 만드는 것은 손쉬워라.
만들었다 지우는 아기처럼
금세 지울 죽음이나 떠올리며
가만히 불러보는 세상이여
오래오래 놓치고 싶지 않은 이름처럼
서른 넘겨 견디어 온 이 세상이여
캄캄한 부름으로
살아라 친구여 살아라 친구여
*
때로 산다는 것이 몹시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 않는가? 영화 <카프카>를 보면서 나는 소더버그의 영화 중 단연 최고의 영화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가 아니라 바로 이 <카프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영화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이 <카프카>라는 영화가 비록 천재라 불리었던 소더버그 감독의 두번째 작품치고는 너무 범작 수준에 머무른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이 <카프카>는 시대를 읽어내는데 있어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못지 않게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얼핏 쉽사리 독일표현주의 영화 기법에 기대어 만들어진 듯 보이는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독일 표현주의>에 기대었고 그것을 프란츠 카프카의 삶과 그의 작품 <성(城)>과의 사이에서 의사(疑史)역사 혹은 대체(代替)역사와 같은 느낌을 주도록 했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독일표현주의는 나치의 발흥을 예견하면서 그에 따른 극도의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이용하여 선과 악의 대립이나 심리적, 주관적인 카메라의 움직임, 분위기나 감정 상태를 반영하는 극단적인 명암의 대비(조명), 현실감이 거의 없는 기하학적이고 회화적인 무대 장치, 연극같이 과장되고 기교화된 연기 패턴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을 통칭해서 말하고 있다.
영화 <카프카>는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과 내면을 보이지 않는 <성>이라는 고도로 상징화된 자본주의의 체제와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그리고 작가 카프카는 그 둘 사이에 갇혀 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상상해보는 바로 그런 악몽을 이 영화는 현실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만약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한 편을 먹고 나를 속이는 것이라면 그래서 사실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인데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이라면 어머니, 아머지가 사실 나의 친부모가 아니라 나를 납치해서 키우고 있는 것이라면 이런 류의 공포들은 지극히 유치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 내면에 이런 공포는 상존해 있고 그만큼 원초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공포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의 예를 들자면 <신체강탈자의 밤>이라거나 <트루먼쇼>, <컨스피러시>, X-파일, MIB, 좀비류, 뱀파이어류의 영화들 또한 그 범주 안에 들어 있다. 가령 외계인이 인간의 신체를 빼앗고 그의 육신 안에 깃들어 있다거나 악령이 깃든다는 따위의 영화들이 풍기고 있는 공포들 말이다. 적은 근처에 있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카프카>의 결말은 그렇다. 결국 <성>에서 나온 인간도살자들은 한 순간에 반란을 음모하고 꿈꾼 자들을 처리한다. 그 살인솜씨는 가히 귀신의 솜씨에 버금간다. 이를테면 그들은 알지 말아야 할것을 너무 많이 알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깊이 잠든 밤 사이에 일시에 제거되고 작가 카프카 역시 이 모든 사실을 목격하지만 침묵함으로써 진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직설적인 화법으로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안고서 그렇게 괴기스러운(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소설 <성>을 쓰게 되었고,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거대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소설 <변신>을 쓰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반란자들은 제거되고 아침이 되자 세상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돌아간다. 그러니 진실을 알고 있는 카프카. 작가 카프카는 괴로운 것이다. 우리는 일상 생활을 하면서 이런 말못할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작게는 학교에서, 회사에서, 가정에서 억울함을 호소치 못하고 가슴에 꾹꾹 담아두고 살아가게 되고, 크게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 민족, 체제, 세계의 변화에 이르기 까지의 그 답답함을 안고 살아간다.
카프카는 그런 영화다. 앞서 <살아라 친구여>를 말하면서 이렇게먼 길을 돌아오게 된 것은 결국 그런 맥락에서이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이런 답답함에 대해 같이 음모하고, 괴로워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오래오래 힘든 이 세상도
살아라 친구여
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영화 <카프카>의 한 부분처럼
죽자고 일하던 사람들 돌아와
새벽을 기다리던 어둠 속에서
새벽이 오면 무엇하랴
풀 끝에 맺힐 이슬 아예 시들고
굴러서 깨어질 빛의 파편만
남은 일의 무게에 눌려 눈 시린데
희망을 만드는 것은 손쉬워라.
라고 시인은 말하는 것이다. "새벽이면 무엇하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세상이 왔지만, 더이상 사람들은 변혁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모두가 바로 지금 당장의 쾌락에 젖어, 거짓 풍요에 흥청망청하지만 그것이 비록 지금 내 눈에는 모두 보이지만 어쩔 수 없어 괴로와하지만 그래도 친구에게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비록 거짓 희망을 만드는 것은 쉬워 보여도 그것이 진짜 희망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절망해야 할 시간들이기 때문에 그 절망을 뚫고 살아가라고 친구에게 시인은 말하고 있다.
캄캄한 부름으로...
인간이 외로운 것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살아라 친구여"라고 당신이 격려해줄, 격려받을 친구 하나 있다면 조금 덜 외롭지 않겠는가? 비록 그 절망의 짐은 오로지 당신의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도 살란 말이다.
이 암담한 세상에서...
- 김재진
오래오래 힘든 이 세상도
살아라 친구여
참담히 눈물 마른 들판 질러
강인 듯 기적소리 하나 흘러가고
서른을 넘겨버린 빈 날들 모아
쭉정이처럼 후후 날리며
살아라 친구여 살아라 친구여
죽자고 일하던 사람들 돌아와
새벽을 기다리던 어둠 속에서
새벽이 오면 무엇하랴
풀 끝에 맺힐 이슬 아예 시들고
굴러서 깨어질 빛의 파편만
남은 일의 무게에 눌려 눈 시린데
희망을 만드는 것은 손쉬워라.
만들었다 지우는 아기처럼
금세 지울 죽음이나 떠올리며
가만히 불러보는 세상이여
오래오래 놓치고 싶지 않은 이름처럼
서른 넘겨 견디어 온 이 세상이여
캄캄한 부름으로
살아라 친구여 살아라 친구여
*
때로 산다는 것이 몹시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 않는가? 영화 <카프카>를 보면서 나는 소더버그의 영화 중 단연 최고의 영화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가 아니라 바로 이 <카프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영화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이 <카프카>라는 영화가 비록 천재라 불리었던 소더버그 감독의 두번째 작품치고는 너무 범작 수준에 머무른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이 <카프카>는 시대를 읽어내는데 있어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못지 않게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얼핏 쉽사리 독일표현주의 영화 기법에 기대어 만들어진 듯 보이는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독일 표현주의>에 기대었고 그것을 프란츠 카프카의 삶과 그의 작품 <성(城)>과의 사이에서 의사(疑史)역사 혹은 대체(代替)역사와 같은 느낌을 주도록 했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독일표현주의는 나치의 발흥을 예견하면서 그에 따른 극도의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이용하여 선과 악의 대립이나 심리적, 주관적인 카메라의 움직임, 분위기나 감정 상태를 반영하는 극단적인 명암의 대비(조명), 현실감이 거의 없는 기하학적이고 회화적인 무대 장치, 연극같이 과장되고 기교화된 연기 패턴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을 통칭해서 말하고 있다.
영화 <카프카>는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과 내면을 보이지 않는 <성>이라는 고도로 상징화된 자본주의의 체제와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그리고 작가 카프카는 그 둘 사이에 갇혀 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상상해보는 바로 그런 악몽을 이 영화는 현실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만약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한 편을 먹고 나를 속이는 것이라면 그래서 사실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인데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이라면 어머니, 아머지가 사실 나의 친부모가 아니라 나를 납치해서 키우고 있는 것이라면 이런 류의 공포들은 지극히 유치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 내면에 이런 공포는 상존해 있고 그만큼 원초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공포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의 예를 들자면 <신체강탈자의 밤>이라거나 <트루먼쇼>, <컨스피러시>, X-파일, MIB, 좀비류, 뱀파이어류의 영화들 또한 그 범주 안에 들어 있다. 가령 외계인이 인간의 신체를 빼앗고 그의 육신 안에 깃들어 있다거나 악령이 깃든다는 따위의 영화들이 풍기고 있는 공포들 말이다. 적은 근처에 있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카프카>의 결말은 그렇다. 결국 <성>에서 나온 인간도살자들은 한 순간에 반란을 음모하고 꿈꾼 자들을 처리한다. 그 살인솜씨는 가히 귀신의 솜씨에 버금간다. 이를테면 그들은 알지 말아야 할것을 너무 많이 알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깊이 잠든 밤 사이에 일시에 제거되고 작가 카프카 역시 이 모든 사실을 목격하지만 침묵함으로써 진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직설적인 화법으로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안고서 그렇게 괴기스러운(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소설 <성>을 쓰게 되었고,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거대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소설 <변신>을 쓰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반란자들은 제거되고 아침이 되자 세상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돌아간다. 그러니 진실을 알고 있는 카프카. 작가 카프카는 괴로운 것이다. 우리는 일상 생활을 하면서 이런 말못할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작게는 학교에서, 회사에서, 가정에서 억울함을 호소치 못하고 가슴에 꾹꾹 담아두고 살아가게 되고, 크게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 민족, 체제, 세계의 변화에 이르기 까지의 그 답답함을 안고 살아간다.
카프카는 그런 영화다. 앞서 <살아라 친구여>를 말하면서 이렇게먼 길을 돌아오게 된 것은 결국 그런 맥락에서이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이런 답답함에 대해 같이 음모하고, 괴로워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오래오래 힘든 이 세상도
살아라 친구여
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영화 <카프카>의 한 부분처럼
죽자고 일하던 사람들 돌아와
새벽을 기다리던 어둠 속에서
새벽이 오면 무엇하랴
풀 끝에 맺힐 이슬 아예 시들고
굴러서 깨어질 빛의 파편만
남은 일의 무게에 눌려 눈 시린데
희망을 만드는 것은 손쉬워라.
라고 시인은 말하는 것이다. "새벽이면 무엇하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세상이 왔지만, 더이상 사람들은 변혁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모두가 바로 지금 당장의 쾌락에 젖어, 거짓 풍요에 흥청망청하지만 그것이 비록 지금 내 눈에는 모두 보이지만 어쩔 수 없어 괴로와하지만 그래도 친구에게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비록 거짓 희망을 만드는 것은 쉬워 보여도 그것이 진짜 희망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절망해야 할 시간들이기 때문에 그 절망을 뚫고 살아가라고 친구에게 시인은 말하고 있다.
캄캄한 부름으로...
인간이 외로운 것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살아라 친구여"라고 당신이 격려해줄, 격려받을 친구 하나 있다면 조금 덜 외롭지 않겠는가? 비록 그 절망의 짐은 오로지 당신의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도 살란 말이다.
이 암담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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