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 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병에 꽃아다오


*


'사랑'에 대해서 나는 긴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또 우울하다. 그리고 다들 한 마디씩 하고 있는 '사랑'이 어찌 남녀간의 사랑만 있을까보냐마는, 어찌 플라토닉 러브가 없을까 보냐마는, 그렇게 고상하고 우아한 사랑이 없을까 보냐마는 사랑 중 진짜 가슴 아픈 사랑은 육욕적인 사랑, 그럼으로써 우리가 늘상 즐기고, 가슴 아프고, 헤어지고, 욕하고, 싸우고, 지랄지랄하고 하는 그런게 내게는 사랑이다.

'세속적인 사랑!'

당신의 가슴을 열어보고, 그 가슴 옷 속에 잘 뉘어져 있나 확인하고 싶고, 그 가슴살을 꼬집어보고 싶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보고, 유두 끝을 간질러보고 싶고, 방귀 냄새를 맡는 게, 그래서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베게로 머리통을 내리치고 싶도록 당신이 밉기도 한 게, 그게 나의 사랑이다.

사랑은 그토록 구체적인 것이다. 남자도 가끔 노을지는 하늘을 날아 집으로 돌아가는 철새를 보고 이유없이 울 수 있는 짐승이다. 여자도 방귀뀌고, 트림하고 팬티 끝에 오줌 튀는 게 여자다. 내가 당신을 아무리 사랑해도, 당신이 배 부르다고 내 배가 부르는 것 아니듯. 당신이 창자 속에 암덩어리를 산만하게 키우더라도 내 손끝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듯, 우리가 원래부터 남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당신에게 빼주느라 내 갈비뼈가 하나 모자르지 않다는 의학적 진실을 잊지 마시길.... 당신이 내 영혼의 반쪽이라는 싯구를 믿지 마시길... 당신이 날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듯... 나역시 내가 당신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음을 잊지 마시길... 부디 잊지 마시길... 제발 잊지 마시길...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


사랑은 이처럼 그대를 위해 죽는 것도 아니고, 살아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 최승자는 왜 그렇게 말할까? 우리들 중 누구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알아도 모르는 것이 내 마음이다. 사랑이 삶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또한 모르고 있듯이... 물론 이 시는 페미니즘적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나는 어쩐지 이 시에서 내 팔과 다리를 분질러 꽃병에이 꽂아달란 말이 이유없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사랑은 반지와 닮지 않았고, 오히려 감기와 비슷하다. 아플만큼 아파야 낫고, 낫고 나서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그렇게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아닌가?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이 웬수야!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