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끝
-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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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사에서 1980년대는 단연코 '시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사실 그 이면에는 이해하지 못할 몇 가지 사건들이 있는데 한 가지는 1960년의 초반 최인훈의 <광장>을 필두로 황석영의 <객지>, 윤흥길의 <장마>, 전상국, 이청준, 박완서 등등 많은 작가들이 소설 문학의 부흥이랄까 - 특히 <광장>은 남한의 작가적 시선이 드디어 고루한 민족주의 경계를 넘어 세계사적 인식의 범위까지 가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고, <객지>는 계급이라는 틀에 대해서 작가들의 발언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하는 것들을 이끌었음에도 80년대에는 어째서 그런 소설 문학이 일제히(이것은 사실 약간의 과장이다.) 침묵했는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제 조금씩 정리되고 있는 몇가지 설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80년 벽두에 벌어진 <광주 5.18>이 그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 엄청난 사건 앞에서 작가들이 끝없는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좀더 나아간 견해는 시문학이 이 엄청난 상황에서 좀더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르적 기민성이 있는 반면에 소설은 이런 상황을 분석하고 내면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1990년대 접어들면서 급격한 동구의 몰락 등으로 이데올로기적 혼선을 빚어, 이에 대해 말할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물론 1980년대의 작가들이 시대적 의무를 방기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우리 공화국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작가들을 감옥에 보낸 시기가 그 무렵이 아니었던가 싶기 때문이다.(물론 이 자리에서 그것을 분석하자는 것은 아니므로 이쯤해두기로 하고.) 어쨌든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우리 문학의 전단계가 1980년 광주라는 숙제를 아직까지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지금 현재 21세기에 이르기 까지 비록 먼길(사소설 양식의 범람이나 엽기, 재기발랄 풍의 소설)을 돌아오고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 이 숙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의무를 다했다고 말하기 어려우리란 판단에서이다.
독일의 나치 정부는 하이네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로렐라이>라는 곡을 민요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하이네라는 민중 시인을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을지 모른다. 우리는 하이네를 단순히 서정시인으로 알고 있지만 하이네는 단순히 서정시만을 쓰지는 않았다. 반대로 김남주 시인이 민중시만 쓰지는 않앗던 것처럼…
그 '시의 시대'를 빛낸 대표적 시인 중 하나가 바로 이성복이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이 <그 여름의 끝>은 1990년 발간된 세번째 시집 <그 여름의 끝>에 수록되어 있는 시입니다. 어쩌면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는 그 여름은 1980년대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1980년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연이어 불어오는 '폭풍에도 백일홍 나무'는 꺽이지 않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그의 '절망'이었다. 그것은 과연 절망이기만 했을까. 그의 절망은 물론 시대의 잔혹함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인의 가녀린 감수성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백일홍 나무는 꺽이지 않았고, 붉은 꽃들을 매달았다. 그는 절망을 통해 어쩌면 희망을 간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려움 속에서 붉은 꽃을 매단다는 것이 시인의 눈에는 장난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장난은 오히려 반어이자 역설이 된다. 그 연이어지는 폭풍 속에서 꽃을 맺는다는 것이 어찌 장난처럼 손 쉬운 일이었을까?
이 시가 성취하고 있는 고도의 상징성은 두 차례 반복되는 '장난처럼'이라는 비유에서 획득되는 것이다. 그 붉은 꽃은 장난처럼 피었다가 장난처럼 저버리고 만다.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시인이 백일홍 나무에서 붉은 꽃이 피는 것을 거부했을까? 이 시의 외면에는 마치 시인이 백일홍 나무에서 붉은 꽃이 피는 것을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시인이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은 라고 말하는 순간 장난처럼 그의 절망에, 그가 걸었던 희망이 꺽임을 마치 선사의 '할'과 같이 맥이 탁 풀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김수영 시인의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꾸어 버렸다"는 그 명제가 떠오른다. 저는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을 읽으며 어쩐지 4.19가 5.16으로 좌절되던 그 순간의 울분을 삼키지 못한 김수영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성복 시인은 1982년 <제2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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