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색채를 포함한)로 말하기에 익숙한 예술가나 그것을 읽어들이는 전문적인 훈련을 쌓은 미술비평가들의 고민이 무엇일까? 회화 혹은 조각을 모두 포함한 예술 장르로서의 미술, 거기에 난해함을 더한 현대 미술의 조류를 모두 한눈에 파악하고 있는 감상자들, 일명 고급 문화 향수자들이라 해야할 일부를 제외하고 미술은 그저 막막한 대상에 불과할 것이다. 마치 보리수 밑에서 진리를 터득한 부처이지만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단이 없다면 과연 오늘날의 불교가 성립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고민이 예술가와 미술비평가의 고민일 것이다. 자신은 어떤 회화를 보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나 그것을 일반 감상자들 에게 전할 방법이 없다면 그 아름다움을 발견한 비평가도, 그 작품을 만든 작가 자신도 답답하지 않을까?
특히 이 대목에서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이미 이미지를 자신의 언어로 채용한 작가들이 아니라 일종의 번역자라고 할 수도 있는 비평가들의 것이 더욱 크고 고심스러운 대목일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체화한 모국어를 매개로 한 예술인 '문학' 조차도 안목있는 감상을 위해서는 감상자의 적절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데, 미술이란 물론 그 자체가 번역이 필요없는 만국의 공통어라 할지라도 역시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한 훈련과 교육은 필요한 것일게다. 게다가 이 책의 제목인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란 말에도 숨겨져 있듯 '서양화'란 말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닌, 즉 우리의 삶과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외부의 것이란 점에서 미술비평가의 고민은 이중의 것이 된다. 우리의 문화가 우리 토양(자연환경)에서 우리의 삶(생활환경)과 역사를 통해 내면화된 체험임에도 그것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할 터인데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황의 감상이란 그만큼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주헌 역시 고민의 출발점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1.2권 구분은 그런 점에서 상업적인 고려에 의한 분권이라기 보다 책의 목적 자체에 부합하는 구분이다. 우선 1권은 '미술감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 이 책의 목표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일종의 소재별, 주제별 장르 구분이랄 수 있는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와 같은 장르화들 마다 별도의 장을 두어 설명하고, 서양 미술의 중요한 개념들인 원근법, 빛과 색, 상징, 모델을 다룬다. 2권에 이르면 사조로 살펴 본 서양미술사라 할 수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고전주의에서 표현주의, 야수파에 이르는 서양 미술의 역사와 사조를 그리고 그 안에서 분화된 다양한 미술 유파의 흐름을 일일이 추적하고 있다. 그외에도 추상화, 판화, 조각, 미술관, 미술시장과 같이 중요하지만 자칫 소홀하기 쉬운 분야와 실질적인 미술감상을 위한 도움글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이주헌의 글을 참 좋아한다. 그의 글은 예술을 다루는 이의 글이 지녀야 할 미덕들을 적절히 가지고 있다. 우선 그는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적당히 흥분할 줄 안다. 이 말은 그가 대중적인 시각과 수준을 가늠할 줄 안다는 뜻이며 미술 평론을 업으로 삼데 그것을 즐길 줄 안다는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또 살짝 거리두기를 할 줄 안다. 이 책은 미술의 매우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그러므로 빠질 수 있는 다양한 함정들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미술(서양화)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애정은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의 역할을 하고자 만들어진 책이다. 서양미술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텍스트를 필요로 하는, 이것을 발판 삼아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매우 든든한 친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자신있게 보기'를 위해서라며 사실은 독자를 윽박질러 온 미술입문서와 다르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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