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말
- 정양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진 모래밭에 한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면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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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시펄...저도 따라 해봅니다.
관계자를 제외하곤 율님이 이 블로그에 처음으로 댓글을 남기셨군요. ^^
정말이요! 영광입니다^^
첫 댓글을 욕으로 열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영광이죠. 크흐
남몰래 하늘이 읽어달라고 써 두던, 지나가는 바람이 읽어달라고 새겨두었던 글들이, 이름이 한두마디씩 다 있어 그런지 잘 읽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야 글 읽어주고 잘 읽었다 하는 사람이 제일 고맙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