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황지우 (黃芝雨)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보면 朝鮮八道, 모든 명당은 초소다 한려수도, 내항선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 █ 나는 문학을 오랫동안 벗삼아 살아왔다고 감히 자평하고 싶은 인간 중 하나이지만, 여적 외우는 시가 없다. 물론 정현종 시인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나는 그 섬에 가고 싶다" 정도는 염치불구하고 빼놓아야하지만, 대학 다닐 때 어느 문학평론가가 강의하는 강의에서 자신이 외울 수 있는 시 한 편을 암기해서 적어내는 쪽지 시험이 있었다. 미리 예정된 시험이었으므로 나는 한 편의 시를 고르기로 했다. 그러자 갑자기 책꽂이에 꽂혀있는 모든 시집들이 소리쳐 외치기 시작했다. 밤새 한 편의 시도 외우기로 결정하지 못한 나는 결국 그 무렵 갓 나온 황지우의 시집 한 권에서 이 시를 찾아 외우려고 노력했다. 나의 이런 비참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노력은 무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과연 그렇게까지 노력을 했는지도 의문이지만) 결국 단 한 편의 시도 암기하지 못하고 시험장에 임해서야 간신히 대안을 발견해냈다. 마치 원래부터 그러했던 것인양 필통에 이 시를 적어놓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다 한 편의 시도 외우지 못했다. 그리고 나 혼자 이렇게 파렴치한 독백을 했던 것 같다. '고대 이래 시는 노래였으나 근대의 시는 더이상 노래가 아니라 읽는 것이 되었다'고. 그 교수님, 지금도 이런 시험을 치르는지 모르겠다. 밤새 시집들이 덤벼들어 곤란했던 그 밤이 그립네...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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