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 문화학교서울 지음, 문화학교서울(1995)
요새 소장함을 들춰보며 이것저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 문득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란 책에 눈길이 머물렀다. 아, 1995년 무렵 나는 무얼하고 있었지? 하는 생각에 그 무렵의 일기장을 열어보았다. 나는 매년 일기장에 제목을 붙이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 1995년의 일기 제목은 "또 다른 별에서 한 세상을 살고 있는...나!"였다. 아, 너무 비웃지들 마시라. 나는 저무렵 아직 20대 중반에 불과했다구.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무척 아팠었다. 졸업여행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하더니 졸업한 뒤 거의 6개월 가량을 누워서 지내야 했다.
문제는 허리였는데, 아픈 곳은 머리였다. 졸업한 뒤 아무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는 백수 생활을 한다는 거, 게다가 기약없이 몸져누운 상태라는 거 멀쩡한 정신으론 참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지낸 뒤 알바자리가 나서 출판사에서 알바를 하며 지내다가 정식 직원으로 취직했다. 출판사 알바를 한 6개월여 하다가 나중에 광고쪽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내가 다니던 직장은 신사동에 무슨 극장 맞은 편에 있었는데, 그 덕분에 영화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이 해는 영화 탄생 100주년이기도 했다. 이 책을 구해 읽은 것도 아마 그 무렵의 일이었을 거다. 방 구석 어딘가 돌아다니다가 누가 집어가서 없어져서 나중에 다시 힘들게 서점에서 구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 이 책을 읽으면 영 입맛이 씁쓸하다. 묵은 일기장을 뒤적이는 것처럼.... 사실 영화탄생 100주년을 맞이해서 서울의 대표적 시네마 테크인 '문화학교 서울'에서 발간한 이 책은 어딜보더라도 80년대 이념과 더불어 영화의 세례를 받은 젊은 청춘들의 가열찬(?) 의지에 비해 이를 뒷받침하는 능력은 아직 그에 못 미치는 아마추어 티가 팍팍 느껴지는 책이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제목부터 "불타는 필름..." 아닌가?
사실 이 책의 제목은 1960년대 군부독재 치하의 아르헨티나를 세밀하게 기록한 페르난도 솔라나스(Fernando E. Solanas)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La Hora de Los Hornos)>에서 따온 것이다.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이 옥타비오 게티노(Octavio Getino)와 공동으로 각본을 써서 좌파 페론주의자들이 결성한 시네 리베라시옹의 작품으로 1969년에 완성될 때까지 무려 3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전두환 군부독재 체제 아래에서 비밀리에 광주 비디오가 유포되고, 비밀리에 상영되었던 것처럼 4시간 20분에 달하는 대작이었지만 이 영화 역시 비밀리에 사영되었고, 중간에 상영을 멈추고 관객들에게 이런 현실에 대해 논쟁하라고 권유하는 등 영화상영과 관람이 또다른 정치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다. 그것은 이 영화의 부제명이 "신식민주의의 폭력과 해방에 관한 기록과 증거"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요새는 문화가 시대의 주된 흐름인 만큼 작정만 한다면 이보다는 훨씬 더 폼나게 책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이 책은 참 폼이 안 난다. 이미지 중심의 책도 아닌데, 판형은 거의 예전 영화잡지들 크기로 뻘쭘하니 크고, 두께는 영화주간지 한 2권 정도밖에 안 되니 폼이 안 난다. 게다가 인쇄를 한 건지 마스터를 돌린 건지 모를 인쇄하며, 종이용지 역시 우리가 흔히 서적지로 보게 되는 미색모조 80g이 아니고, 백색모조지를 사용해서 조악한 활자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게다가 글의 수준도 들쭉날쭉이다. 1995년은 나에게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해였다. 이 해 나는 대학에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 전해에도 한 명의 친구가 사고로 죽었는데, 내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은 이듬해에는 또 한 명의 동기가 죽었다. 이번엔 자살이었다. 해마다 한 명씩의 동기가 젊은 나이에 죽는 경험을 한다는 건, 제 아무리 어려서부터 주변 지인들의 죽음을 익숙하게 접해왔던 나라고 할지라도 충격이었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나에겐 불타는 청춘의 연대기와 우연히 겹친다. 이 책은 영화 기점을 뤼미에르 형제로 잡아서 1895년으로부터 1995년에 이르는 영화, 필름의 연대기를 시대의 배열, 장르 영화의 소개, 각국가별 영화적 특색, 작가주의 감독 소개, 사조 등의 배열로 나름대로 균형을 잡아 선정하고, 배치하려 한 흔적이 보인다. 오늘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이 책의 흔적은 곳곳에서 보인다. 이 책을 그 사람들이 죄다 사서 읽고, 일일이 타이핑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정보들이 이제는 얼마나 흔해졌는가를 알 수 있다. 다행히 이 책은 절판되었다. 영화에 대해 좋은 책들이 연일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 시대 우리 문화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영화로 대표되는 영상매체인 만큼 그와 관련한 대중의 호기심과 이를 충족시켜주고자 하는 출판자본의 행복한 결합이 질좋은 용지를 사용하고, 세련된 편집의 디자인, 양질의 이미지들을 담아 출판되고 있다.
문득 시네마테크인 '문화학교 서울'이 여전히 존재하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한다. 어쩐지 안심이다. 음악을 흔히 시간의 예술이라 하고, 연극을 순간의 예술이라고 한다. 인간의 연령을 이와 흡사하게 비교해본다면 확실히 청춘은 순간의 예술에 속한다. 그럼에도 청춘의 시간은 더디기만 하다. 뉘 반항할 곳 없어도 반항하는 것이 청춘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말도 있지만, 이 책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가 출판될 무렵만 하더라도 우리 영화가 오늘날의 이런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영화탄생 100주년이라는 화려한 축하의 계절이 지나간지도 어느덧 오래되어 기억도 가물가물해진다. 어떤가? 그 세월, 시간의 흐름이 이렇게 책 한 권을... 퇴물로 만든다. 이 책을 처음 만들던 불타는 영화광들도 어느덧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그들이 처음 이 책을 만들 때 이 책이 지난 시간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이렇게 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걸 당시에 예상했을지 아니면 그 보다 더 오래가기를 희망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이 책 자체는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그 첫 인상이 주었던 강렬함만큼 - 아니 어쩌면 그것은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의 영화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 여러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는지 지금도 여러 행사들에서 차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노력이 한 권의 책을 만들고, 다시 이 책에서 불을 붙인 영화학도들이 세상에 나와 새로운 영화들을 만든다. 그들의 작업이 과연 10년전보다 나은 영화를, 이 책을 처음 만들던 이들이 생각했던 한국 영화의 미래, 영화예술의 미래를 추구하고, 만들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뿜어내었던 그 무렵의 문제의식과 발상만큼은 이 책의 작가들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들은 영화에 들씌어진 온갖 미사여구들 이른바 '예술 영화'니 '컬트'니 하는 영화의 허상을 깨고, 영화를 바로 세우고, 땅에 발딛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에 대한 온갖 찬사와 거짓말 같은 담론의 거품을 빠고 조용히 그러나 진지하게 스크린과 우리들의 거리를 재보았습니다. 그 위치 조정이 성공한다면, 우리의 영화 환경은 매우 달라질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 후편이 궁금하다.
이 무렵 나는 일기에 시인지, 낙서인지 모를 글 하나를 끄적여 두었는데 일부만 소개해본다면 내용인즉... 이랬다.
쓸쓸한 날에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며
쥐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허풍떠는 꼭 그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을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 그대에게 알리고 싶다
쥐처럼 천장벽지에 가끔 오줌도 찍 갈기며
책도, 활자도, 인생도 시간과 승부한다. 책과 활자는 한 번 인쇄되어 나오면 세월과 함께 변치 않는다. 다만 쇠락해간다. 그러나 사람은 변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저주인가.... 나도 한 때 영화를 꿈꾸었으니...
* 그 무렵의 나는 한국문화예술의 능력을 100이라고 했을 때 이들의 모든 관심이 온통 영화 같은 영상매체로만 쏠려있는 것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불과 10여년 사이 나의 이런 비관은 그저 그런 전망쯤으로 돌아와 있다. 한국 영화가 가고 있는 길이 겉보기만큼 화려하지 않으며 우리 사회의 다른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그 저변이란 것은 극히 취약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영화를 만드는 나라에 제대로된 시네마 테크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여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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