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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대중문화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 원용진 | 한나래(1996)


『대중 문화의 패러다임』 - 원용진 | 한나래(1996)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인 원용진의 책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은 대중문화이론에 대한 기초 입문서로는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인 책이란 증거는 이 책의 판권란에 기재된 쇄수를 확인해도 알 수 있다. 1996년 10월 초판이 인쇄된 이후 내가 소장하고 있는 2004년 9월까지 1판 16쇄를 찍어내고 있다. 최근 인문학 관련 서적들의 초판 인쇄 부수가 300부까지 떨어졌다는 비관적인 출판계 뉴스가 들려오는 이 때에 원용진 교수의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은 단연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책머리에" 해당하는 글의 제목을 "변명 몇 가지"란 제목으로 대체하고 있다. 변명의 내용인 즉 1993년부터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으나 미국에서 친구가 보내준 책 한 권이 그가 저술하고 있는 책과 내용은 물론, 책의 순서, 참고문헌의 내용까지도 겹치는 책이란 사실이다. 저서란 기본적으로 저자의 창작물이라고 했을 때 원용진의 고민은 심각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부분을 읽노라니 문득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존 스토리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이란 책인데,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을 출간한 출판사 한나래는 언론문화총서 시리즈로 대중문화 연구와 관련된 여러 종의 책들을 펴내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지점에서 또다른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출판사가 "현실문화연구"다.

 

존 스토리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이 국내에서 출판된 것이 1994년의 일이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판이 1995년에 나온 재판이다. 최근까지 이 책이 출간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원용진의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은 저자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존 스토리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과 달리 책으로서는 물론, 저자의 창작물로서도 독자적인 지형을 확보하고 있으며 생명력을 지녔다는 반증이다. 사실, 원용진의 "대중문화의 패러다임"과 존 스토리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은 물론 얼마전 서평을 올리기도 했던 김정은의 "대중문화 읽기와 비평적 글쓰기" 그리고 김창남의 "대중문화의 이해"는 약간의(사실 약간이라고 하기엔 큰 차이지만) 차이를 제외하곤 대중문화이론 입문서로 공통된 주제와 분야를 다루는 책들이다. 이들 책이 지니고 있는 앞서 작다고는 했지만 나름대로 독자적인 기획과 장단점을 지닌 책들이다(물론 나는 위에 언급한 네 종의 책을 모두 읽었다).

 

김정은의 "대중문화 읽기와 비평적 글쓰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용 교재를 엮은 것으로 이 분야의 책 가운데 가장 쉽고, 재미있으면서 중요한 개념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미리 결론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원용진의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은 김정은의 것을 좀더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대중문화이론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공부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란 말이다. 거기에 존 스토리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과의 차별점은 존 스토리의 저서가 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라면, 원용진의 책은 국내의 사례를 들고 있기에 사례를 중심으로 이해하기엔 이 책이 좀더 편하다. 김창남의 책 역시 그런 점에서는 같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다만, 한 가지 김창남의 책은 이런 대중문화이론 국내 수용 부분에 대해 별도의 장으로 빼내어 다루고 있다는 점이 원용진의 책과 다른 점이다.

 

대중문화이론에 대한 입문서로 위에 언급하고 있는 네 권의 책은(그외에도 몇 종이 더 있지만) 국내에 출판된 것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고, 권할 만한 책이란 공통점을 지닌 것들이다(앞서 이미 두 권의 책 - 김정은, 김창남 - 은 리뷰한 바 있다). 그렇다면 대중문화란 무엇일까?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위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을 읽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다만 대중문화가 미학이나 사회학, 정치학, 언론학 등과 다른 독자적인 지형을 차지할 수 있고, 차지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는 이야기할 수 있을 듯 싶다. 그에 대해 원용진은 지난 1995년 봄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신문기사를 인용해 설명한다.

 

서울 서대문 경찰서는 13일 대학 캠퍼스 안의 조형 미술 작품을 고철덩어리로 잘못 알고 고물상에 팔아넘긴 혐의로 인부 조모 씨 등 2명을 구속. 조씨는 11일 오후 6시 10분쯤 상명여대 운동장에서 철제 조각품 5점(학교측 시가 3,000만 원 주장)을 타이탄 트럭에 싣고 나가 인근 d고물상에 2만 150원을 받고 팔았다는 것. 조씨는 12일 오전에도 용접기를 준비해 "고철을 주우러 가자"며 친구 도모씨와 상명여대에 들어가 전날 미처 가져가지 못한 다른 대형 철제 조각품 2점을 절단하다 미술학과 대학원생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조씨는 경찰에서 "학교 측이 귀찮아 처리하지 않은 줄 않았다"며 "고철덩어리가 미술작품이라니 미술 작품이라니 믿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본문 37쪽>

 

누군가에게는 시가 3,000만원 상당의 가치를 지닌 조형물이 누군가의 눈에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쉽게 내뱉지 못하는 말이기도 하다. 순수와 참여의 구분이 오랫동안 우리 문화계의 주된 담론으로 다뤄지는 동안 대중은 소외되고 있었다. 어떤 미학적 기준으로 문화를 설명하느냐에 따라 문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즐기는 문화는 엘리트들의 폄하를, 반대로 대중의 눈에는 엘리트들이 즐기는 문화는 난해하기만 문화로 보인다. 저자는 위의 사건이 그런 인식차를 잘 보여주는 사건으로 예시한다.(80년대를 거치며 기층민중문화의 생명력과 가치를 발견한 것은 운동권이었다. 그에 비해 대중이 즐기는 문화는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작(장)된 문화로, 상업적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민중문화와 대중문화는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까?) 저자는 새로운 인식론인 후기 구조주의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출현 덕으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은 모두 9장으로 구분되고 있는데, "1. 넘치는 대중 문화, 대중 문화론 2. 대중 문화론 지도 그리기 3. 대중 사회론"에 이르는 3장은 대중문화를 논의하는데 있어 필요한 기본 개념들을 설명하는데 할애되고 있다. 이 책의 전체 가운데 가장 흥미롭게 쓰였고, 공들인 부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본론이자 대중문화이론의 여러 갈래들, 패러다임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 것은 "4. 마르크스주의 문화론 5. 문화주의 문화론 6. 구조주의 문화론 7. 여성 해방주의 문화론 8.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부분이다. 이 장들에서는 각각의 구분에 따라 해당하는 문화론의 범주 안에서 다뤄지는 중요 개념들,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 맨마지막 부분인 "9. 문화연구 : 종합적 패러다임"에서 저자는 대중문화를 분석한다는 것의 의미에 비중을 두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모두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대중과 문화, 대중문화와 대중문화론의 갈피가 확연히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물론 독서의 어려움 탓이기도 하겠지만, 정작 모호한 것은 이런 대중문화의 구분이 아니라 학문적인 영역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대중문화 자체의 모호함 탓인지도 모른다. 대중문화를 하나의 갈래로 구분해, 그 중요성을 발견해낸 이는 매튜 아놀드와 E.P.톰슨, 레이몬드 윌리엄스의 갈래라 할 수 있다. 레이몬드 윌리엄스는 대중을 의미하는 'mass' 란 단어가 20세기의 '폭도/군중(mob)' 이라는 말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재해석하면서 이 용어는 대중매체에 호응하는 일반대중에 대해 반민주주의적인 문화적 선입견을 갖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윌리엄스는 대중(mass)이란 개념은 사람들을 오합지졸의 무리로 표현하여,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그의 저서 "텔레비전론"에서)고 주장한다.

* 지난 2010년 "새로 쓴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이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