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액션영화(살림지식총서 44) - 오승욱 | 살림(2003)
▶ 고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암살자>
시집 한 권에 1,500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야 그 시절보다 더 저렴했던 시절도 있었을 테니 두 말하면 입 아픈 얘기다. 요새 시집 한 권에 얼마더라... 하고 살펴보니 한 권에 6,000원 정도 한단다. 이번에 살림지식총서 중 예술 분야로 묶인 10권들이 한 세트를 구입했다. 정가대로하면 33,000원이다. 물론 인터넷으로 구했으니 가격은 더 저렴해진다. 어쨌든 이 한 권의 정가는 3,300원이다. 시집이랑 판형이 똑같고, 쪽수도 100쪽 안팎으로 손에 잡히는 느낌도 똑같다.
이 책은 주제가 재미있어서 먼저 읽게 된 책이다. 제목하여 "한국 액션 영화"다. 액션 영화라... 액션영화는 비디오 가게를 즐겨찾는 배부르고, 적당히 삶이 피곤한 인생들이 시간 떼우기용으로 빌려보기 딱이란 선입견이 먼저 든다. 또 실제로도 그런 이들이 즐겨 찾는다. 아줌마들이 TV드라마를 놓친다고 해도 스토리 이어가기에 별로 문제가 없듯 액션 비디오를 돌리면서 잠깐 화장실 갔다 온다 해서 스토리에 어떤 단절이 오지 않는다. 그 말은 액션 장르의 문법, 서사구조가 대동소이한 탓이다.
같은 문법에 약간의 비틀기만 들어가도 액션 영화란 장르에서는 성공적이란 평을 듣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약간이라도 비틀면서 그것이 어색해지지 않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생각해보라 영화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분야가 어느 것일지) "좀 더, 좀 더, 좀 더"하면서 액션의 강도가 강화되다보니 스너프 무비가 아닌 이상 액션이 보여줄 수 있는 것, 액션이 도달할 수 있는 묘사는 어지간해서는 대중을 감동시키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악역은 더욱 잔인해져야 하고, 카타르시스를 위해 악역의 최후는 더욱 비참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봐야 또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액션영화는 상업영화의 주류 장르이면서도 영화비평가들이나 연구자들에겐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장르다. 이 책은 그 틈새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
▶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스틸 컷
"올드 보이"는 액션 영화다. 아닌가? 아니라고 해도 좋지만, 액션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를 그대로 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렸을 때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준 죄로 가족을 잃고, 악마 같은 인물이 짜놓은 얼개대로 자신의 딸과 근친상간을 맺고, 그것을 알게 되고, 복수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으로 살다가 최면을 통해 그런 자신의 과거 중 일부를 지워버린다는 내용이다. 물론, 과거 액션영화들이 보여주듯 단순도식화된 패러다임은 아니지만, 기본 구조 자체는 액션영화의 틀 속에 있다.
오승욱의 "한국액션영화"는 "올드보이"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60년대말에서 70년대 초의 한국 영화 가운데 액션 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들에 대한 시네마 키드이자 현재 영화인이기도 한 오승욱(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인)의 "그땐 그랬지"류의 회고담이다. 그러나 그는 회고하기엔 아직 너무 젊고, 그저 킬킬거리고 웃자니 지금 현장에 있는 영화인이므로 일반 독자들이 그러하듯 킬킬거리고 웃기만 할 수는 없다. 물론 무겁게 몸 한 번 풀자고 쓴 글이 아니니 액션영화에 대한 미학적 분석이나 고리타분해지기까지한 영화이론을 한 바탕 풀어놓고 사라지는 글도 아니다. 그는 개인의 회고를 통해 대중성을 얻고, 틈틈이 자신의 견해를 녹여낸다(글 잘 쓴다, 하긴 당연하지 ).
▶ <놈놈놈>은 갑자기 튀어나온 영화가 아니다. '만주 웨스턴'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
그는 과거 한국영화의 전성기이자 동시에 쇠망기이기도 했던 호시절의 액션영화들을 살펴보면서 무언으로 현재 한국 영화가 누리고 있는 영화와 번성의 기운 속에서 우리의 뿌리를 들추어낸다. 협객, 김효천, 박노식, 이두용 등의 이야기... 어떻게 하면 영화 속에서 총기 사용을 그럴듯하게 꾸며볼까 고민하는(한국은 총기소지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속에서 만들어진 만주 웨스턴까지... 100여쪽 내외의 짤막한 글에서 우리 영화, 액션 장르에 대한 그의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글을 읽는 건 분명 즐거웠다. 내외에 널리 권하고 싶다.
▶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한국전쟁영화 <포화속으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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