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음악의 아홉 가지 갈래들』 - 신현준 | 문학과지성사(1997)
역사 서술의 한 방식이자 대표적인 것으로 통사(通史)란 것이 있다. 시대 순으로 중요한 사건과 경험들을 서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 교과서가 바로 이런 통사의 일종이다. 역사 서술의 시작이자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통사는 역사를 강물에 여러 지류들이 합류하며 흘러가는 것처럼 기술되는 특성을 지닌다. 통사가 역사 서술의 시작이라는 것은 역사란 것이 기본적으로 시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출발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 그 종착점이라 함은 역사 기술이 하나의 사관에 따라 조합되고 정리되는 수순을 밟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사적 서술이 만능은 아니다. 특히 록음악과 같이 하위 장르가 잡초의 뿌리처럼 분화해간 장르의 서술의 경우엔 더더군다나 어렵다. 그래서 록음악에 대한 그럴듯한 통사가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신현준은 대중음악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문화비평가로, 이 방면에 여러 권의 책을 상재해놓고 있다. 이외에도 한겨레21, 웹진 weiv 등에 대중음악과 관련한 글들을 접할 수 있다. 평소 신현준의 글을 접할 기회가 있었던 나로서는 『록 음악의 아홉 가지 갈래들』을 읽으면서 혼자 미소 짓는 경험을 몇 차례 했다. 본인 자신이 책머리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문지스펙트럼의 문화마당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록음악에 대한 일종의 입문서라는 책을 집필하는 것은 어쩐지 그답지 않은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통사를 역사서술의 시작이자, 종착점이라 했는데, 이 말은 입문이자 끝이란 뜻이기도 하다. 역사학자가 궁극적으로 해보이고 싶은 일은 아마도 자신의 사관을 담은 통사를 엮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통사들이 나와 있으므로 자칫하면 진부한 글쓰기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록 음악의 장르와 스타일들을 아티스트 중심으로 소개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외국에서 이런 유형의 책들은 수도 없이 많고, 국내에도 이미 상당수가 출판되어 있다. … 중략 … 더구나 이런 ‘스탠더드’한 방식의 글쓰기에 대해 어쭙잖은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자기모순에 빠지는 일임이 분명하다. <책 머리에, 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쓴 이유를 발명(發明)하기 위함인지 저자는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의 필요성과 기성의 형식을 따르지 않은, 한국형 록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는 이유 등에 대해 미리 밝혀두고 있다(그의 다른 글들이 상당히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이 확실히 스탠더드하긴 하다). 그런데 그 뒤에 이르는 록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좀 헷갈리게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모호함과 혼돈스러움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록 음악은 적절한 대상일 수 있다는 정도다. 애증이 교차하는, 때로는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이 중독성 강한 사운드는 종종 약물에 비유되어 왔다. 록 음악을 즐기는 패거리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끔찍하다고 느끼는 존재라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다. 그들(우리?)은 끔찍함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중독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책머리에, 8쪽>
저자 신현준은 록 음악을 이 견디기 힘든, 끔찍한 세상에 대한 패배자들의 중독 약품이거나 그런 세상에 대해 부단한 대결을 벌이는 진지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자본의 넘치는 탄력과 포옹하지 않을 수 없는 록 음악의 (상업적)한계를 생각한다면, 신현준의 관점엔 동의하기도 거부하기도 어렵다. 따지고 보면 그런 고민은 록 음악을 의식, 무의식적으로 즐기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저자는 『록 음악의 아홉 가지 갈래들』을 통해 저자 자신이 말한 그런 류의 고민들을 과연 스탠더드한 글쓰기로 담아내고 있을까? 물론, 그것을 감식해내는 것이 독자의 몫이긴 하다.
어찌되었든 저자의 저런 고민을 마음에 담고서 『록 음악의 아홉 가지 갈래들』을 짚어나가다 보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아홉 가지 갈래(편의상 블루스, 컨트리, 포크, 인디,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하드 록, 글램, 펑크 계열 등 아홉 가지 갈래로 구분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록 음악의 장르들을 다루고 있다.) 의 록 음악에서 두 가지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하나는 반항이고, 다른 하나는 강제된 혹은 자발적 순응으로서의 록 음악이다. 신현준의 책에서 특히 백미로 꼽을 수 있는 부분은 특히 체제 반항적인 록 음악 장르의 대명사인 포크와 펑크 계열을 다룬 3장 「Hey, Mr. Tambourine man」과 9장 「Smells Like Teen Sprit」부분인 걸로 느껴진다. 특히, 이 부분들이 좋게 느껴진 것은 신현준의 특기인 사회와 음악의 민감한 연결고리들을 더듬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측면들이 비록 스탠더드한 글쓰기가 요구되는 입문서 특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들을 고려해가며 읽는다면 이 책의 록 음악 입문서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문고판 특유의 저렴함(지금은 6,000원으로 올랐지만, 초판인 1997년 당시의 가격은 5,000원이었으므로)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문고판 판형인데 신국판과 동일한 크기의 서체가 사용되어 좀 읽을 만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겨야 하는 점, 개별 아티스트들에 대한 소개가 부족한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음반 가운데 상당수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음악을 다룬 책의 원 텍스트가 음악 자체라고 했을 때, 전송권에 제약을 둔 신저작권법이 발효된 현실에선 참 난감한 일이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법적, 사회적 통제력은 그에 미치지 못해 생겨난 우스운 제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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