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Sex - 정치적으로 올바른 섹스 스토리 / 김이윤 / 이프 / 2000년
"여자가 기저귀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돼!"
어제 뉴스를 보니 총신대학교의 채플 시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쪽 총회장인 임태득 목사(대구 대명교회 당회장)가 최근 “우리 교단에서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턱도 없다”며 상식이하의 여성 비하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 목사는 지난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총신대학교 채플시간 설교에서 “대한민국 어느 교단이든지 여자 목사, 여자 장로 만들어도, 우리 교단은 안 돼. 그게 보수고, 그게 성경적이고, 그게 신학에 맞는 거야”라며 “여자들이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 돼!”라고 말했다는데, 예장 합동 교단은 국내에 신자가 2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거대 교단이다.
책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가십성 기사 이야기를 왜 들먹이는가하면 이 책의 저자인 김이윤 선생이 현직 목사 신분이라는 것과 이 책 "Happy Sex"가 성서(Holy Bible)상에 등장하는 여러 성(sex)적인 이야기들과 현재 고착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성적인 역할(gender) 혹은 성(sex)차별적인 요소 - 바탕에 기독교적인 윤리관이 근저에 깔려 있음을 - 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Happy Sex"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기란 다소 난감하다. 판갈이를 하면서 현재는 표지가 핑크빛에서 녹색톤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겉표지에 큼지막하게 책명이 적혀 있으니 그냥 들고 타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기가 다소 난감해 보인다. 제목만 놓고 보면 책 속에 온갖 기기묘묘한 체위들과 방중술이 소개되어 있을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솔직히 그런 책도 재미있기는 하다. 은근히 즐기는 편? 흐흐) 그런데 책 내용은 그보다는 훨씬 더 건전하다. 물론 앞서 말한 총신대 채플 시간에 '기저귀 찬 여자들이 목사 안수 받는 것은 성서적으로 그르다'고 판단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마귀들린 이단자들이나 할 수 있는 말로 비칠 수도 있겠다.
이 책의 필자 김이윤은 목사 신분으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논리들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의 보수종단들에 대한 인식을 공격하면서도 그 모든 바탕에 기독교적인 윤리관(?)이 근저에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 근본주의(보수주의)에 대한 공격에는 매우 유효하게 보이지만, 타종교를 들먹이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당연하게도' 서구적인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기존의 고루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충격일 테지만, 어떤 부분은 뭐 당연한 얘기를 하는 정도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을 거칠게 압축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기존의 종교(특히, 개신교)는 대중(혹은 평신도들)에게 성에 대한 인식에 있어 부정적인, 혹은 심각한 왜곡을 가하고 있다. 그런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남존여비의 인식을 강요하게 되었으며, 정신에 비해 몸을 악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종교적 구원, 즉 정신해방은 결국 몸의 해방에 이른 남녀간 서로에 대한 영혼과 육체의 결정권을 자신들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의 성을 소유하려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야 지독히 맞는 말 아니겠는가? 그의 주장이 건전하고 상식적이라는 것은 그의 생각이 가치전복적이라거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내적인 혹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적인 모순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돌을 던지지 말자! 목사님이 아닌가.
나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섹스 스토리"라고 했을 때 '올바른 섹스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한 장벽에 대해서 필자는 적시하고 있고, 그 부분들에 대해 매우 효과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6장의 구분 속에 진행된다. 첫번째는 우리 사회가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 지적하고, 둘째 장에서는 결혼 제도, 셋째 장에서는 성직자들 - 종교에 관련한 서비스업종 종사자들의 성의식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넷째 장에 이르러서는 성서 상의 여러 성애 사건들에 대해 다루면서 어떻게 가부장제적 질서 속에 성서의 말씀들을 변형시키고, 그것을 그 자체의 말씀으로 가부장제적 질서를 강제하는 기능과 권위를, 성서를 통해 부여받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그리고 다섯 째 장에 이르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다시 여섯째 장에 이르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최종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일견 당연한 말이지만 이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은 '성서 속에 나타난 인간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루고 있는 넷째 장이고, 가장 재미없어지는 부분은 매우 상식적일 수 있고, 어느 경우에는 그것 또한 편견으로 보이는 다섯째 장이다. 그리고 여섯째 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안은 이제는 상식일 수도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재미가 적다. 게다가 이 책은 군데군데 틀려서는 안 될 부분들에 대해 필자의 실수인지, 도서출판 '이프' 측의 실수인지 모를 오식들이 보이고, 필자의 육성이 거칠게 묻어나는 몇몇 문장들이 보인다. 물론 이 책의 가장 큰 문제 혹은 부족한 점은 이 모든 문제들 - 성차별을 비롯한 성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 을 종교적 혹은 관념적인 문제로 치환하고 있는데 있다. 정치경제학적인 문제들은 이 책에서 등한히 되고 있거나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한 저자가 세상의 어떤 현상에 드러나는 혹은 배후에 숨겨져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척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망명지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토론들을 한 적이 있다. 이 책에는 그 때 논의 되었던 논쟁거리들의 상당수를 잘 정리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제목 때문에 주저되시는 분이라면 당신의 편견 때문에라도 더욱더 추천하고 싶다. 꼭 구해서 읽어보시길 바란다.
<200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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