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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박주택 -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 박주택


여행자처럼 돌아온다
저 여린 가슴
세상의 고단함과 외로움의 휘황한
고적을 깨달은 뒤
시간의 기둥 뒤를 돌아 조용히 돌아온다

어떤 결심으로 꼼지락거리는 그를 바라다본다
숫기적은 청년처럼 후박나무 아래에서
돌멩이를 차다가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물방울이 간지럽히는 흙을
바라다보고 있다

물에 젖은 돌에서는 모래가 부풀어 빛나고
저 혼자 걸어갈 수 없는
의자들만 비에 젖는다

기억의 끝을 이파리가 흔들어 놓은 듯
가방을 오른손으로 바꾸어 들고
느릿한 걸음으로 돌아온다

저 오랜 투병의 가슴
집으로 돌아온다
지친 넋을 떼어 바다에 보탠 뒤
곤한 안경을 깨워
멀고 먼 길을 다시 돌아온다


출처 : 박주택,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문학동네(1996)

*

박주택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의 표제작이다. 이 시에서 가슴을 저미게 하는 구절은 “저 혼자 걸어갈 수 없는/ 의자들만 비에 젖는다”라는 부분이었다. 떠날 수 있다고 해서 비에 젖을 일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인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그리 말하는 것에 이 시의 묘미가 있다.

방랑에 낭만의 이미지가 착색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의 경험이다. 영국에서 방랑자는 곧 부랑자 ․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채찍질을 당하거나 낙인이 찍혀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서양 중세던 동양의 봉건사회에서던 정부의 행정력이 지방까지 고루 미치기 어려웠던 시절엔 주민의 이동을 봉쇄하는 것이 주민통제정책으로 가장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그 같은 역사적 전통은 디지털 문명 시대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컴퓨터 키보드 자판에 ‘Home'의 반대말은 ‘End’로 자리 잡는다.

중세교회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라는 망자(亡者)들의 대기소를 만들어 죽음 이후의 시간까지 교회의 통제권에 넣고 싶었던 것처럼 근대화된 권력은 노동자 ․ 농민의 휴식 시간까지 그들의 통제 아래 두고 싶어 했다. 자본주의 이후 집과 노동현장은 분리되었고, 자본주의는 집에서 혹은 집 앞의 토지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노동하던 이들을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에는 퇴근하는 자본주의형 인간으로 새롭게 훈육했다.

기도와 휴식 시간을 알리던 삼종 대신 집집마다 거리마다 시계가 내걸리게 되었고, 저마다 시계 하나씩을 소유하게 된다. 아마도 처음 시계를 가지게 된 사람들은 오늘날 어딜 가나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모바일 핸드폰의 통제만큼 시간의 통제를 거추장스럽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기업들은 민중계급의 저항에 밀려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타협에 임하면서 민중계급의 휴식이 이른바 레저산업이라는 예상외의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한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여가 시간이 근대의 새로운 풍속도를 - 자전거 여행과 축구를 범민중적인 것으로 - 만들었다. 그로부터 방랑은 낭만적인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연휴에 나는 촛불시위도 마다하고, 시 외곽으로 나가고 싶었다. 아침부터 서둘렀으나 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거의 모든 도로가 나와 같은 마음을 품은 도시민들의 행렬로 봉쇄되었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가 여름의 마지막에 찾아온 황금  연휴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교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포기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내가 목적하는 곳까지 가기 위해 10시간 가까이 도로 위에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끔찍함이 내 발길을 되돌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세계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한다고 한다. 차를 되돌리며 나는 도시라는 거대한 집단수용소를 발견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저 혼자 걸어갈 수 없는 의자”의 신세가 된 것이다.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아픈 휴식을 되풀이하며 우리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이름없이 마모되어가는 나사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