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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외국시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 미들클래스 블루스


미들클래스 블루스
 
-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우리는 불평할 수 없다.
우리는 할 일이 있다.
우리는 배부르다.
우리는 먹는다.
 
풀이 자란다.
지엔피가 자란다.
손톱이 자란다.
과거가 자란다.
 
거리는 한산하다.
종전 협상은 완벽하다.
방공경보는 울리지 않는다.
다 지나갔다.
 
죽은 이들은 유언장을 썼다.
비는 그쳤다.
전쟁은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그것은 급할 것이 없다.
 
우리는 풀을 먹는다.
우리는 지엔피를 먹는다.
우리는 손톱을 먹는다.
우리는 과거를 먹는다.
 
우리는 감출 것이 없다.
우리는 늦출 것이 없다.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가?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상황은 정돈되었다.
접시는 씻겼다.
마지막 버스가 지나간다.
 
버스는 비어있다.
 
우리는 불평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가?



*

가끔 그 놈의 중산층 허위의식이란 것이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나를 쳐다본다. 범고래가 물 위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과학자들을 자신도 관찰하기 위해 가끔 수면 위로 머리를 들어올릴 때처럼 그렇게....

누군가 문장 뒤에 말 줄임표를 많이 쓰는 사람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뭔가 불만많은 불안하고 심약하며 혹은 우쭐하고 우울하며 공격적인, 저 기만적이고 허위로 가득한 폐를 헐떡이며 성공의 지름길을 달려가는 중산층의 저 사내. 할 일이 있으므로 불평할 일이 없고, 우리는 배부르게 먹는다. GNP를 먹고, 과거를 먹어치운다. 뒤돌아보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번성한다. 가끔씩 엇박자로 돌아가는 이 불쌍한 중생들..... 마지막 버스가 지나갔으므로 우리는 기다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