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혁명
- D.H.로렌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쫓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출처 : 제대로 된 혁명 - 로렌스 시선집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은이), 류점석 (옮긴이) | 아우라(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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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 등하교 길 부끄러움 반, 긴장 반으로 남들 몰래 담벼락의 영화 포스터를 훔쳐보는 것으로 D.H.로렌스를 처음 만났다. <차타레 부인의 사랑>이었던가? 반쯤 열리다 만 눈동자와 기다란 목덜미의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영화 포스터였을 거다. D.H.로렌스가 오해받기 쉬운 인물이란 점만 놓고 보자면 칼 마르크스의 반열에 세워도 좋다.
농부이자 미술, 사진, 사회비평가이며 소설가이기도 한 존 버거(John Berger)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아직까지 마르크스주의자냐고. 자본주의가 보여준 이른바 이윤의 추구에 의해 오늘날처럼 광범위하고 극심한 파괴가 자행된 적은 지난 역사에서 없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진대, 그 파괴와 재난을 예고하고 분석했던 마르크스에게 어찌 주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송두리째 상실하고 있다는 것으로 나를 향한 저 물음의 답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 한 장 지니지 않은 그들은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 역시 과거의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렇지 않다. 어느 의미로든 지금 우리가 꿈꾸는 혁명이란 D.H.로렌스의 혁명에 좀더 가까운 혁명인 듯싶다. 누군가는 2008년 초봄부터 시작되었던 촛불의 도도한 흐름이 한갓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며 절망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적 진보란 ‘두려움 없는 절망, 패배를 모르는 절망, 체념하지 않는 절망’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절망하라! 어떤 희망도, 기대도 없이 그러나 우리는 계속 전진한다. 멈추지 않고…. “그저 재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