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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외국시

루이 아라공 - 죽음이 오는 데에는

죽음이 오는 데에는


- 루이 아라공
(Louis Aragon, 1897 - 1982)



죽음이 오는 데에는
거의 일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 그때
알몸의 손이 와서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손은 되돌려주었다
내 손이 잃었던 색깔을
내 손의 진짜 모습을
다가오는 매일 매달
광활한 여름의
인간들의 사건에로 업무에로

뭐가 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항상 몸을 떨고 있었던
나에게 나의 생활에
바람과 같은 커다란 목도리를 두르고
나를 가라앉히는 데는
두 개의 팔이면 족했던 것이다

그렇다 족했던 것이다
다만 하나의 몸짓만으로
잠결에 갑자기 나를 만지는

저 가벼운 동작만으로
내 어깨에 걸린 잠 속의 숨결이나
또는 한 방울의 이슬만으로

밤 속에서 하나의 이마가
내 가슴에 기대며
커다란 두 눈을 뜬다
그러면 이 우주 속의
모든 것이 나에게 보이기 시작한다
황금빛의 보리밭처럼

아름다운 정원의 풀 속에서
그러면 죽어 있는 것과 같았던
나의 마음은 숨을 되찾아
향긋한 향기가 감돈다
상쾌한 그림자 속에서


*

최인훈의 『광장』에서 나오는 이 대목을 나는 무척이나 사랑했었다.

『광장』에서 이명준은 <광장>을 찾아 월북했지만 그곳에서도 꿈꾸던 광장을 발견하지 못한다. 명준은 대신 무용수 은혜를 만나 그 여자의 다리를 베고 눕는 것으로 절망과 허무를 이기고자 했다.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이 잔잔한 느낌만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이 다리를 위해서라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모든 소비에트를 팔기라도 하리라.”

그는 사랑에서 그 자신이 超克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절망과 허무를 극복하려고 들었다.

“이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수컷이면 그만이다.”

1950년대 소위 먹물근성이라 해야할까. 티토가 끝끝내 소비에트를 버리지 못했던 까닭, 스탈린이 끊임없이 그의 제거를 염원했음에도 스탈린주의를 말끔히 치워버리지 못했던 까닭, 그건 스탈린주의를 경험한 좌파든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파든 상관없이 그들이 살아왔던 과거가 현재보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온힘을 다해 성취한 현재의 소비에트, 현재의 반공주의에 입각한 국가 안보, 천박한 자본주의의 번영에도 불구하고 .............


루이 아라공....

나는 그가 "미래의 노래"에서 보여준

인간만이 사랑을 가진 자이기에
자기가 품었던 꿈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자기가 불렀던 노래가 다른 사람의 입술로
자기가 걸었던 길이 다른 사람의 길로
자기의 사랑마저 다른 사람의 팔로 성취되고
자기가 뿌렸던 씨를 다른 사람들이
따게 하도록 사람들은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인간만이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다

<미래의 노래 - 첫번째 연>

이런 대책없는 낙관주의를 사랑한다. 심지어 응당 시인이라면 그래야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시인이 자기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독자들에게 대책없는 희망을 노래하는 것에 대해 나는 부정적이다. 아니, 심지어 경멸해 마지 않는다. 그런데 루이 아라공의 경우엔 그것이 대책없는 낙관주의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던 듯 싶다. 그래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싶다. 왜냐하면 그에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만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1928년 러시아 태생의 엘자 트리올레트를 만나 결혼했고, 아내로부터 끊임없는 영감을 받았던 시인. 루이 아라공...

왜 아니겠는가?

그에겐 전 소비에트를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아니 결단코 바꾸지 않으리라 생각한 엘자 트리올레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순간에 다가오는 죽음조차 그녀의 두 팔이 다가와 안아주기만 한다면 이겨낼 수 있는 ...

루이 아라공은 아내 엘자의 이름을 건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엘자의 눈
나에게는 엘자의 파리밖에 없다

애처가였을까? 남자라서가 아니라 어떤 인간은 둘이되 결코 둘이지 않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들국화의 노래처럼...

"혼자는 너무 외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