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사막을 지나(A travers Mers et Desert)
- 앙리 미쇼(Henri Michaux)
효력 있다 숫처녀와 씹하듯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사막에 물이 없듯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따로 서 있는 배반자처럼
효력 있다 물건을 감추는 밤처럼
효력 있다 새끼를 낳는 염소처럼
조그맣고 조그맣고 벌써 비탄에 잠긴 새끼들
효력 있다 독사처럼
효력 있다 상처를 낸 단도처럼
그걸 보존하기 위한 녹과 오줌처럼
강하게 하기 위한 충격, 추락, 동요처럼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결코 마르지 않는 증오의 대양을 가슴에 심어주기 위한 모멸의 웃음처럼
효력 있다 몸을 말리고 넋을 굳히는 사막처럼
효력 있다 내팽개쳐 논 시체를 뜯어 먹는 하이에나의 턱처럼
효력 있다
효력 있다 내 행동은
<출처> 앙리 미쇼, 김현, 권오룡 옮김, 바다와 사막을 지나, 열음사(1985)
*
앙리 미쇼의 시집을 오랜만에 들춰보다가 '빙긋' 웃음 짓는다. "효력 있다 숫처녀와 씹하듯" '빙긋', 혹은 '벙긋' 그리고 '봉긋'... 뭔가 에로틱하다. 그러므로 "효력 있다"는 "효력 있다".
앙리 미쇼는 1899년에 태어난 시인이다. 세기말에 태어나 세기말에 죽었다. 오래 살았다. 그의 시어들은 반복된다. 반복하며 확장한다. 김현이든, 권오룡이든 왜 이 사람들은 굳이 "씹하듯"이라 했을까? 난 짖궂게도 혹은 10대 소년처럼 그 이유가 궁금하다.
김현은 "적대적인 세계와 자아 사이의 절망적인 싸움"을 벌인 시인으로 앙리 미쇼를 해석하고 있는데, 나는 앙리 미쇼보다 김현에게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이 간다. 당신은 왜 구태여 "씹"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바슐라르'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점잖은 불문학 교수이자 수많은 시인을 발굴해낸 문학평론가인 그가 어째서?
난 그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가 우리 문학사에 보기 드물게 '진짜'였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의 생각, 자기의 언어를 가진 사람만이 저렇게 당당하게 옮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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