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귀족을 위한 '이런 나라'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도 일본 닌텐도처럼 창의성 있는 제품을 개발할 수 없느냐?”고 말했다는데 일본의 튼튼한 문화적 인프라에 기초한 이러한 제품을 건물 짓듯 단기간 내에 만들어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애니메이션 중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누리며, 영화 <매트릭스>의 원형으로도 평가받는 작품이 <공각기동대>다. <공각기동대> 시리즈에 등장하는 ‘웃는 남자(스마일맨)’ 같은 캐릭터 설정만 살펴보더라도 깊이 있는 인문학적 토대 위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웃는 남자는 얼마 전 구속된 미네르바처럼 사이버세계 속에서 가면을 쓰고 기업의 잘못된 이윤추구와 이를 비호하는 권력에 도전했다가 정보기관에 추적당하는 인물이었다. 지난 촛불시위에서 사람들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처럼 정보기관이 추적하면 할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웃는 남자를 자처하며 나타나기 때문에 검거하기가 더욱더 어려워진다. 이 작품의 웃는 남자란 캐릭터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에서 유래된 것인데, <공각기동대> 외에도 영화 <배트맨>에서 주연보다 인기 있는 악역 캐릭터인 조커의 원형이 되기도 했다.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저항하다 20여 년간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빅토르 위고의 체험이 녹아있는 『웃는 남자』의 시대 배경은 청교도 혁명이 실패로 끝난 직후인 17세기의 영국이다. 크롬웰이 죽고 공화정에서 왕정으로 돌아갔지만 제임스 2세는 과거의 교훈을 잊고 독재와 실정을 거듭했고, 빈부격차는 더욱 커졌다. 왕은 공화정의 기억을 아예 말살하기 위해 복종하지 않는 공화파 귀족들을 제거했고, 혈통까지 끊어버릴 속셈으로 어린이 매매단을 이용해 반대파의 자식들을 납치한다.
그윈플레인은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행복한 삶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두 살 때 아버지가 숙청당하고, 매매단에 납치되어 입이 귀까지 찢어지는 형벌을 받는다. 그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웃는 얼굴을 하게 되었다. 웃는 남자는 익살광대가 되어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굶주리고 고통 받는 빈민층의 삶을 바로 이웃에서 목격했고, 그 자신이 거대한 벙어리들, 민중을 위한 입이 되리라 다짐한다. 우여곡절 끝에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다시 귀족 신분을 얻게 된 웃는 남자는 여왕이 참석한 상원 회의에서 연설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굶주린 백성들의 현실과 지배계급의 오만과 탐욕을 질타한다.
“경들께서는 세력 있고 부유하십니다.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경들은 어둠을 이용해 득을 취하십니다.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또 다른 거대한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명입니다. 여명은 정복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원에 모인 귀족들은 웃는 남자의 일그러지고 흉한 몰골을 비웃으며 아무도 그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얼마 전 우리는 여당 의원들이 국회 안에서 육탄전을 벌이고, 소화기를 뿌려대며 대통령과 자신들이 입법한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애쓰는 광경을 보았다. 그러나 이 법안의 수혜자들은 국민이 아니라 17세기 영국의 귀족들처럼 혈연, 학벌, 부동산을 소유한 대한민국의 1% 귀족들이다. 정부는 이들의 세금을 20조원이나 깎아주었는데 나날이 인상되는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이는 데는 5조원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런 법안, 이런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
네티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휴대전화, 메일 감청 및 감시를 합법화하는 정보보호법, 통신비밀보호법,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다원화된 여론 형성과 자유로운 언론, 사회적 약자의 여론 참여를 가로막았다. 대신 대기업과 일부 보수언론의 신문, 방송 겸영과 지상파 종합편성 보도채널 허용을 담고 있는 언론법 개정안, 금산분리라는 중요한 시장경제질서의 원칙을 허물고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가능하게 만드는 은행법 등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개정안의 수혜자는 99%의 국민이 아니라 1% 귀족들이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은 ‘이런 나라는 없다’며 공권력에 도전하는 국민들을 질타했지만 국민들은 도리어 대통령의 말을 듣고 웃었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고도의 안티성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대통령은 지금껏 없었으므로 국민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웃음에는 뒤끝이 있다.
출처 : <경향신문>, 2009. 3. 30.
* <경향신문>에 청탁받아 칼럼을 쓰고 있다. 필진 칼럼이라 대략 3주 내지는 4주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것 같은데, 이번 칼럼은 어쩌다보니 원고 보낸 뒤 2주나 묵어 나오게 되었다. 신문사 사정이 그러하다니 어쩔 수 없었다. 기왕에 늦었으니 시의성이 떨어질 듯 하여 다시 써서 보낼까 하다가 그 사이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이 바뀔 것 같지도 않았고, 글 쓰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져서 그냥 내보냈다. 원고가 좀 길었던 모양이다. 원래 제목은 "웃는 남자의 '이런 나라'"로 해서 보냈는데 "1%의 귀족을 위한 '이런 나라'"가 되었고, 중간에 200자 원고지 1장 정도 분량이 깎였다. 본래 내가 썼던 원문이나마 이곳에 살려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