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발언과 ‘우리집에 왜 왔니’ 놀이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하여, 또한 적법한 국제절차에 따라 로케트(굳이 ICBM이라고 하진 않겠다)의 발사에 성공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 핵의 보유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가장 효율적이며 거의 유일한 방법임을 인지할 때, 우리 배달족이 4,300년 만에 외세에 대항하는 자주적 태세를 갖추었음을 또한 기뻐하며, 대한민국의 핵 주권에 따른 핵보유와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
가수 신해철이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던 중 자신의 홈페이지에 다섯줄의 글을 올렸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앨범 홍보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라 평가 절하하는 이도 있고, 그의 사회비판정신에 대해 나름 믿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이 글이 핵미사일이라는 위험천만한 무기로 민족의 운명을 줄타기하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그간 남북화해협력정책의 성과들을 방치한 채 사태가 악화되도록 손 놓고 있다가 앞장서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남한의 이명박 정권을 싸잡아 조롱한 것이라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저 도발적인 해프닝에 그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신해철의 발언에 대해 국회의원 송영선은 “북한 로켓 발사 성공을 경축하는 사람이라면 김정일 정권하에서 살아야 한다”거나,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신해철 같은 독설가는 북한에선 공개처형감”이라 비판하면서 문제가 더욱 커졌다. 신해철 역시 자위대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송 의원을 친일파라 비꼬고, 셋집 빼서 나가라 호통 치는 집주인에 빗대어 독립투사였던 외증조부 이야기로 맞받아치고 나섰다. 아마도 본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신해철 본인의 의도가 애초에 무엇이었든 ‘라이트코리아’라는 우익단체의 대표가 바퀴벌레나 쓰레기는 치워버려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7조 고무찬양죄로 고발하였으므로 법정에 설 운명이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끼리 패를 지어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하는 놀이를 하며 놀았던 적이 있는데, 지금 논설위원과 국회의원 그리고 우익단체 대표까지 나서 “우리 집에 왜 왔니?”라며 묻고, 질문을 받은 사람은 “여기가 왜 너희 집이냐?”고 되묻는 상황이다. 비록 아이들 놀이지만 어느 패에도 속하지 못하거나 선택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난 故 이청준 선생의 중편소설 중에 『소문의 벽』이란 작품이 있다. 6.25동란 직후 남해의 작은 포구를 배경으로 밤마다 인민군과 국방군이 번갈아 들이닥친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넌 어느 편이냐?’를 묻는다. 대답 여하에 따라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판국이지만 눈이 부시도록 밝게 쏟아지는 전짓불 앞에 서 있는 마을 주민들은 정작 불빛 저편의 사람이 누구 편인지 알 수 없어 잇달아 학살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국가가 인권보다 앞서는, 민족이 핵폭탄으로 스스로의 생존을 보장받겠다고 나서는 현실에서 넌 누구 편이냐고 묻는 국가보안법이 무서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선 그저 재미난 놀이에 불과하지만 어떤 한 가지 질문을 통해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를 구분 지으며 심판하는 일이 실제 국가 내부에서 벌어질 때 그 결과는 전쟁만큼이나 참혹해진다. 나는 신해철의 비아냥거림이 분명 과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를 바퀴벌레나 내다버릴 쓰레기에 빗대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가졌는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농(弄)이라 할지라도 ‘핵의 보유와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는 끔찍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어야 옳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먼저 아이들의 놀이에도 ‘깍두기’라 해서 이편에도 저편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배려해 함께 놀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있는데 과연 우리 사회에 그만한 관용과 상식이 있는지 묻고 싶다.
출처 : <경향신문>(200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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