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에서 온 사진작가
지난 7월17일 제헌절 오후 6시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가 운영하는 평화공간 space*peace에서는 작지만 소중한 모임이 열렸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야 만날 수 있는 나라 과테말라에서 온 사진작가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와 진실규명을 통한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 시민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그는 과테말라 내전 당시 학살된 라틴 아메리카 시민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함으로써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어느 천사의 기억’이란 작품을 학살이 자행되었던 현장이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등 ‘학살의 기억’을 테마로 작업해왔다. 그의 작품은 중남미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 전시·설치되어 비슷한 슬픔과 아픔을 지닌 세계 시민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었다.
1954년 6월18일, 미국의 지원을 약속받은 480명의 쿠데타군이 온두라스 접경 지역을 넘어 과테말라로 쳐들어가는 것으로 쿠데타가 시작되었다. 합법적인 선거로 수립된 과테말라의 아르벤즈 정부는 미국 유나이티드 프루츠(UF) 소유의 바나나공화국이었던 과테말라의 토지와 산업시설을 국유화하고자 했다. 토지 없는 인디오 농민들에게 토지를 재분배하고, 다국적 자본에 종속된 국내 자본을 육성하기 위한 시도였다. 당시 정부군은 5000명에 달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쿠데타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쿠데타 이후 군부의 억압통치와 탄압에 대항해 반정부 무장단체가 결성되었다. 이들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작농과 원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군사정부에 도전하면서 과테말라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30여년 넘게 치러진 과테말라 내전 기간 동안 벌어진 669건의 민간인 학살 중 626건이 군사독재정권이 주도한 국가폭력에 의한 것이었고, 반군들에 의해 벌어진 사건이 30여건으로 추정되고 있다. 20만명 이상이 살해되고, 1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주요 희생자들 가운데 83.33%는 마야인이라 불리는 인디오 원주민들이었다. 내전 종식 이후 최초로 좌파정당(UNE)의 알바로 콜롬 대통령이 52.8%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취임했다. 98년 후앙 호세 헤라르디 주교는 비정부진실위원회를 조직해 “역사적 기억 회복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한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했다. 그러나 ‘인권침해조사보고서’가 출간된 지 이틀 만에 헤라르디 주교는 자택 앞에서 암살당한다. 이외에도 민간인 학살재판의 증인들이 살해되고, 판사의 집에 수류탄이 투척됐다. 검사는 살해협박에 못이겨 해외망명을 떠났다.
전쟁의 세기라는 지난 20세기, 전쟁보다 집단학살(제노사이드)로 희생된 민간인의 숫자(1억7500만명으로 추정)가 훨씬 더 많았다. 70년대 이후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50여개 이상의 각종 과거사청산기구가 활동해왔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은 정치적 타협이나 가해세력에 의한 침묵 강요로 사면이나 면책을 허용하는 것으로 종결되곤 했다. 진실규명을 시도한 많은 나라에서 과거 가해자였던 세력은 여전히 강고한 권력기반을 가진 반면 민주정부는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도 이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다. 과거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설립과정부터 기득권세력으로부터 온간 논란과 저항에 부딪혔다. 한시 기구인 과거사위원회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고사위기에 처했고, 정부와 여당은 위원회 자체를 반대했던 인사를 위원으로 임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고립되었고, 국가기구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유린 상황을 보다 못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사퇴했다. 진실이 소멸되기를 바라는 이들에 의해 강제로 봉인된 기억은 새로운 억압으로 기억될지언정 소멸되지 않으며, 언젠가는 돌아오게 마련이다. 스페인, 아르헨티나, 과테말라에서 과거사 청산운동이 새롭게 시작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광주도청 별관 건물이 무너져도 기억은 소멸되지 않는다. 역사는 그저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출처 : <경향신문>(2009.08.10)
지난 7월17일 제헌절 오후 6시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가 운영하는 평화공간 space*peace에서는 작지만 소중한 모임이 열렸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야 만날 수 있는 나라 과테말라에서 온 사진작가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와 진실규명을 통한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 시민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그는 과테말라 내전 당시 학살된 라틴 아메리카 시민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함으로써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어느 천사의 기억’이란 작품을 학살이 자행되었던 현장이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등 ‘학살의 기억’을 테마로 작업해왔다. 그의 작품은 중남미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 전시·설치되어 비슷한 슬픔과 아픔을 지닌 세계 시민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었다.
1954년 6월18일, 미국의 지원을 약속받은 480명의 쿠데타군이 온두라스 접경 지역을 넘어 과테말라로 쳐들어가는 것으로 쿠데타가 시작되었다. 합법적인 선거로 수립된 과테말라의 아르벤즈 정부는 미국 유나이티드 프루츠(UF) 소유의 바나나공화국이었던 과테말라의 토지와 산업시설을 국유화하고자 했다. 토지 없는 인디오 농민들에게 토지를 재분배하고, 다국적 자본에 종속된 국내 자본을 육성하기 위한 시도였다. 당시 정부군은 5000명에 달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쿠데타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쿠데타 이후 군부의 억압통치와 탄압에 대항해 반정부 무장단체가 결성되었다. 이들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작농과 원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군사정부에 도전하면서 과테말라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30여년 넘게 치러진 과테말라 내전 기간 동안 벌어진 669건의 민간인 학살 중 626건이 군사독재정권이 주도한 국가폭력에 의한 것이었고, 반군들에 의해 벌어진 사건이 30여건으로 추정되고 있다. 20만명 이상이 살해되고, 1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주요 희생자들 가운데 83.33%는 마야인이라 불리는 인디오 원주민들이었다. 내전 종식 이후 최초로 좌파정당(UNE)의 알바로 콜롬 대통령이 52.8%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취임했다. 98년 후앙 호세 헤라르디 주교는 비정부진실위원회를 조직해 “역사적 기억 회복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한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했다. 그러나 ‘인권침해조사보고서’가 출간된 지 이틀 만에 헤라르디 주교는 자택 앞에서 암살당한다. 이외에도 민간인 학살재판의 증인들이 살해되고, 판사의 집에 수류탄이 투척됐다. 검사는 살해협박에 못이겨 해외망명을 떠났다.
전쟁의 세기라는 지난 20세기, 전쟁보다 집단학살(제노사이드)로 희생된 민간인의 숫자(1억7500만명으로 추정)가 훨씬 더 많았다. 70년대 이후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50여개 이상의 각종 과거사청산기구가 활동해왔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은 정치적 타협이나 가해세력에 의한 침묵 강요로 사면이나 면책을 허용하는 것으로 종결되곤 했다. 진실규명을 시도한 많은 나라에서 과거 가해자였던 세력은 여전히 강고한 권력기반을 가진 반면 민주정부는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도 이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다. 과거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설립과정부터 기득권세력으로부터 온간 논란과 저항에 부딪혔다. 한시 기구인 과거사위원회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고사위기에 처했고, 정부와 여당은 위원회 자체를 반대했던 인사를 위원으로 임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고립되었고, 국가기구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유린 상황을 보다 못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사퇴했다. 진실이 소멸되기를 바라는 이들에 의해 강제로 봉인된 기억은 새로운 억압으로 기억될지언정 소멸되지 않으며, 언젠가는 돌아오게 마련이다. 스페인, 아르헨티나, 과테말라에서 과거사 청산운동이 새롭게 시작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광주도청 별관 건물이 무너져도 기억은 소멸되지 않는다. 역사는 그저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출처 : <경향신문>(200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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