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원망도 할 수 없는 정부
▶ 사진 : 이치열
이명박 정부가 지난 16일로 출범 600일을 맞이했다. 대통령 임기 5년(60개월) 중 약 3분의 1이 지난 것이다. 이제부터는 집권 초반기가 아니라 중반기에 들어섰다.
재임 600일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유난히 ‘불(火)’과 인연이 깊었다. 취임 직전에 국보 1호 남대문이 불탔고, 집권 100일 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벌어진 촛불시위를 청와대 뒷산에서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고 2009년 1월20일, 용산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경찰, 용역직원 간의 충돌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는 ‘용산 참사’가 벌어졌다.
이 대통령은 집권 중반을 준비하며 ‘중도 실용, 친 서민 정책’을 내세웠고, 그에 맞춰 청와대 비서진의 진용을 바꾸고 내각도 정운찬 총리 체제로 새롭게 정비했다. 그러자 주춤하던 지지율도 절반 수준을 회복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실업난과 물가고 등의 문제를 남겼지만 경제위기는 진정 국면에 들어섰고, 그동안 꽉 막혀서 도저히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남북문제도 조금씩 진전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유치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대통령의 집권 600일을 맞아 언론이 전하는 국민들의 바람은 한마디로 ‘대한민국 CEO’가 아니라 ‘나라의 어른’이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특정 정당의 정치인이거나 특정 지역, 종교, 계층의 대변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수호자이자 대변자이길 바란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하기 시작한 것도 중도실용정책의 성공 때문이 아니라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의 수장으로서 성의껏 치러준 덕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집권 중반기를 맞은 이명박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보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의 진정한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용산 참사로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이들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용산 참사는 한 차례 사전 협상도 없이 진압에 나서면서 안전대책조차 수립하지 않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 방식 탓에 예고된 참사였다. 참사 발생 이후엔 화재의 원인부터 시작해 경찰청이 조직적으로 여론조작에 참여했다는 논란, 청와대 여론조작 지침 논란 등 무수히 많은 의혹 속에 명확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법원이 검찰에 제출하도록 한 수사기록 3000쪽을 검찰이 공개하고, 용산 참사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대처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없다면 원망은 더욱 더 깊어져만 갈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 상(上)’편에는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부리면 백성들은 비록 고달프더라도 원망하지 아니하며, 살리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죽이면 비록 죽더라도 죽이는 자를 원망하지 아니한다(以佚道使民 雖勞不怨 以生道殺民 雖死不怨殺者)”는 말이 있다.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기 위해 4대강 정비 사업을 한다면 비록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사는 것이 다소 고달파지더라도 국민들은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적 비전이나 계획이 아니라 대운하사업이 어렵게 되자 단기적 경기 부양을 위해 벌이는 토건사업이라면 국민들은 당연히 원망하게 된다. 미래의 시민인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 성폭행범을 무겁게 처벌한다면 설령 형벌이 무거워지더라도 국민은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권의 이익을 위해 방송을 장악하고, 단지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형벌을 무겁게 내리고 억압한다면 당연히 처벌하는 자를 원망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겠노라 발버둥치는 국민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놓고 원망조차 듣지 않겠다는 정부라면 어떤 국민이 원망하지 않겠는가.
* 원래 써서 보낼 때의 제목은 <죽어서도 원망할 수 없는 정부>라고 했는데, 제목이 살짝 달라졌다. 흠, 원제목에 나름 중의적인 메시지를 담았던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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