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기둥
- 이정록
당신을 만나기 전엔,
강물과 강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나 두내받이, 그 물굽이쯤이 사랑인 줄 알았어요.
피가 쏠린다는 말, 배냇니에 씹히는 세상 어미들의 젖꼭지쯤으로만 알았어요.
바람이 든다는 말, 장다리꽃대로 빠져나간 무의 숭숭한 가슴 정도로만 알았어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한밤
강줄기 하나가 쩡쩡 언 발을 떼어내며 달려오다가, 또 다른 강물의 얼음 진군進軍과 맞닥뜨릴 때!
그 자리, 그 상아빛, 그 솟구침, 그 얼음울음, 그 빠개짐을 알게 되었지요.
당신을 만나기 전엔,
얼어붙는다는 말이 뒷골목이나 군인들의 말인 줄만 알았지요. 불기둥만이 사랑인 줄 알았지요.
마지막 숨통을 맞대고 강물 깊이 쇄빙선碎氷船을 처박은 자리,흰 뼈울음이 얼음기둥으로 솟구쳤지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그게 바로 도깨비기둥이란 걸 알았지요. 열 길 물 속보다 깊은
한 길 마음만이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강물은 흐르는 게 아니라 쏠리는 것임을.
알았지요, 다 얼어버렸다는 것은 함께 가겠다는 것.
금강金剛기둥으로 지은 울음 한 채, 먼 하늘주소까지.
*
사랑에 대해 노래한 이정록 시인의 <도깨비기둥>은 의미의 차원에선 '당신을 만나기 전엔'과 '당신을 만난 뒤에야'로 구분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그러하다. '당신'은 삶의 이정표이자 경계다. 당신을 만나기 전과 만난 뒤가 이처럼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나에게 세상은 진짜 세상이 아니다. 아니 세상은 여전히 진짜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의 의미를 생생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꽃이 피는 이유도 당신 때문이고, 해가 뜨는 것도 당신 때문이다. 당신이 없어도 여전히 꽃은 피고 질 것이며, 당신이 없어도 여전히 해는 뜨고 질 것이지만 당신 없이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우리는 그것을 곧잘 '뜨거운 사랑'이라 말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만이 사랑이 아니란 것을 당신을 만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불타고, 얼어버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핵심은 "함께 가겠다는 것", 그것이 비록 울음으로 지은 집, 얼음처럼 차가운 자리라 할 지라도 함께 저 먼 하늘까지 가겠다는 것, 불처럼 뜨겁게 사랑하여 재만 남기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얼음처럼 한 세월을 꽁꽁, 그대와 함께 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