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목탁
- 이동호
무작정 때리다보면
지구라는 이 목탁도 언젠가는 텅텅 소리가 날 테지
빗방울이 땅에 떨어져 '철썩' 마지막으로
목탁 한번 치겠다는 것이
전혀 어불성설은 아니지
빗방울이 연습삼아 사람들 목 위의
목탁을 먼저 쳐보는 것은
지구를 쳐볼 기회가 단 한번 뿐이라서지
비 오는 장날을 걸어다니다가
머리 위, 비닐에 묵직하게 고인 빗물을
고스란히 맞아본 적 있지
나도 모르게 내 몸 속에서
'앗'하는 목탁소리가 터져 나오더군
빗방울이 때리면 뭐든지 목탁이 되고 마는 것
그게 삶, 아니겠어
소리를 내기 위해 물렁해지는
저 땅을 좀 봐
새싹이 목젖처럼 올라오는 것. 보여?
멍 자국이라는 듯 쑥쑥 키를 키우는 저것
소리의 씨앗인 빗방울 속에서 자라는
저 푸른 목탁소리
*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나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이다. 묵은 시간에 갇혀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라.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와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살라.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 일기일회(一期一會),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만남이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다.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순간 속에서 살고 순간 속에서 죽으라. 자기답게 살고 자기답게 죽으라.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불필요한 말을 쏟아 내고 있다. 이것은 영혼의 공해와 같다. 이런 때일수록 본질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찮은 생각을 제쳐 두고 삶의 본질에 눈을 돌려라. 그래야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얻었다고 좋을 것도 없고, 잃었다고 기죽을 것도 없다. 괴롭고 힘든 일도 그때 그곳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다 한때다. 시련이 우리 앞에 온 것도 다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안다면 고통스럽지 않다.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그러면 행복에도 불행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때그때 감사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기약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일기일회(一期一會)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가가 다음의 나를 결정한다. 삶은 인간에게 주어진 길고 어려운,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수행의 길. 매 순간 우리는 다음 생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든 것은 단 한 번.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라.
법정 스님의 첫 법문집, <일기일회(一期一會)>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물의 순환은 유사한 측면이 많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처럼 물 역시 '강우->하천->강->바다->지하수'로 끊임없이 반복하며 지구생태계를 지탱한다. 물 한 방울이 이렇게 순환하는 주기를 이른바 물의 '교환시간'이라 하는데 각 지역의 지질 상황에 따라 물의 교환시간이 달라진다. 대기 중의 물은 약 90일이면 한 차례 교환되고, 하천수의 경우는 11일, 국내의 지하수는 280일 정도에 한 바퀴를 도는데,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공극이 적고 밀도가 높은 대리석층이라 지하수가 1km를 움직이는데 수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 물 한 방울이 지금 지구라는 목탁을 때리고,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들어 새싹을 키운다. 방금 전 내 목덜미를 치고 간 한 방울의 물은 만 년 전 황무지를 헤매다 감로수(甘露水) 한 모금처럼 달콤하게 마셨던 누군가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린 그 한 방울이다. 참으로 인연(因緣)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