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새끼
-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을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 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출처 : 김선태, "살구꽃이 돌아왔다", 창작과비평사>
*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 정을 담뿍 받고 자라지 못했다. 울할머니는 나에게 그것을 늘 네 '팔자소관(八字所關)'이니 아무도 원망하지 말고 원망하려거든 네 팔자를 원망하라고 가르쳤다. 어렸을 적엔 '팔자소관'이란 할미의 말이 성황당 앞에 뚝뚝 떨어지는 촛농처럼 내 신세가 처량맞아 보이고, 내 운명이 기껏 여덟 자,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에 좌우된다는 말이 잡귀에 휘둘린 듯 하여 듣기 싫더니 어느새 내가 자라 이제 딸아이를 둔 아비가 되고 나니 할미의 그때 말씀이 나를 더 삐뚤어지지 않게 지켜준 수호부(守護符) 같은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살이가 모두 제 뜻대로 되는 일이 있으랴 . 나 태어난 것부터 나 돌아가는 일까지 단 일분일초라도 내 뜻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것이 세상살이인데 할미는 혹여 내가 세상 살아가며 어디 한 군데 정 붙일 곳 없는 어린 손자가 제 성질에 못이겨 엇나가는 걸 염려했으리. '네 팔자다, 네 팔자가 그런 탓이니 남 원망말고 살아라.' 사람이 살아가며 원망하고 싶은 일이 왜 없으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처지에 비빌 언덕조차 남겨두지 않고 먼저 떠나버린 아비에 대한 원망과 설움이 왜 없었으랴만 그나마 모두 떠나버리고 없는 사고무친(四顧無親)한 처지에 원망할 곳 어디 한 군데쯤 남겨두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할미는 누구 한 사람, 남을 원망하는 대신, 이렇게 태어난 나 자신을 원망하는 대신, 화풀이 겸 하여 그 대상을 '팔자'라는 한 마디로 아로새겨 놓았다. 내 팔자 탓이려니 하고 귀에 딱지가 앉게 듣다보니 그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남 탓 할 것도 없고, 그저 내 탓이려니 내 팔자소관이 원래 그러하려니 생각하다보니 세상사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 앞에서 겸손을 배웠다. 나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나니 남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저 사람이 내게 저리 하는 것도 그 사람의 팔자려니. 내가 이 못난 사람을 만나 시달림을 당하는 것도, 내가 못난 사람이 되어 당신을 못살게 구는 것도 팔자려니 한다.
'운명'이나 '숙명' 같이 엄청난 무게를 지닌 말도 아니고, 심심파적 삼아 신년운세 떼어보듯 가볍게 받을 수 있는 말, '팔자'란 것이 있는 덕분에 인생의 무게를 고스란히 되받는 대신, '팔자'란 핑계를 대며 옆으로 슬쩍 미뤄둘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가뜩이나 팍팍한 내 삶의 무게 속에 슬쩍 한 번 웃어줄 여유였다. 무엇보다 남 탓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누군가 미워하며 살아가기에 나는 죄가 너무 많고, 또 많은 죄를 지을 것이기에 당신을 미워하는 대신 나는 내 팔자를 쳐다보며 슬쩍 웃어준다. '저 사람이 저리 사는 것도 다 제 팔자 탓이야'하며 ... 김선태 시인의 "조금새끼"를 읽으며 나는 문득 '조금새끼'처럼 팔자 안에 갇히지도, 그렇다고 자유롭지도 못한 우리 네 삶의 편린 한 조각을 줍는다. 말 한 마디에 이처럼 삶이 오롯이 들어있지 않은가. 고요하고 쓸쓸하게... 삶이란 이처럼 한 마디 말로도 모두 표현될 수 있는, 별거 아닌데도 우리는 참 힘들게도 사는구나.
-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을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 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출처 : 김선태, "살구꽃이 돌아왔다",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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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 정을 담뿍 받고 자라지 못했다. 울할머니는 나에게 그것을 늘 네 '팔자소관(八字所關)'이니 아무도 원망하지 말고 원망하려거든 네 팔자를 원망하라고 가르쳤다. 어렸을 적엔 '팔자소관'이란 할미의 말이 성황당 앞에 뚝뚝 떨어지는 촛농처럼 내 신세가 처량맞아 보이고, 내 운명이 기껏 여덟 자,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에 좌우된다는 말이 잡귀에 휘둘린 듯 하여 듣기 싫더니 어느새 내가 자라 이제 딸아이를 둔 아비가 되고 나니 할미의 그때 말씀이 나를 더 삐뚤어지지 않게 지켜준 수호부(守護符) 같은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살이가 모두 제 뜻대로 되는 일이 있으랴 . 나 태어난 것부터 나 돌아가는 일까지 단 일분일초라도 내 뜻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것이 세상살이인데 할미는 혹여 내가 세상 살아가며 어디 한 군데 정 붙일 곳 없는 어린 손자가 제 성질에 못이겨 엇나가는 걸 염려했으리. '네 팔자다, 네 팔자가 그런 탓이니 남 원망말고 살아라.' 사람이 살아가며 원망하고 싶은 일이 왜 없으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처지에 비빌 언덕조차 남겨두지 않고 먼저 떠나버린 아비에 대한 원망과 설움이 왜 없었으랴만 그나마 모두 떠나버리고 없는 사고무친(四顧無親)한 처지에 원망할 곳 어디 한 군데쯤 남겨두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할미는 누구 한 사람, 남을 원망하는 대신, 이렇게 태어난 나 자신을 원망하는 대신, 화풀이 겸 하여 그 대상을 '팔자'라는 한 마디로 아로새겨 놓았다. 내 팔자 탓이려니 하고 귀에 딱지가 앉게 듣다보니 그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남 탓 할 것도 없고, 그저 내 탓이려니 내 팔자소관이 원래 그러하려니 생각하다보니 세상사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 앞에서 겸손을 배웠다. 나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나니 남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저 사람이 내게 저리 하는 것도 그 사람의 팔자려니. 내가 이 못난 사람을 만나 시달림을 당하는 것도, 내가 못난 사람이 되어 당신을 못살게 구는 것도 팔자려니 한다.
'운명'이나 '숙명' 같이 엄청난 무게를 지닌 말도 아니고, 심심파적 삼아 신년운세 떼어보듯 가볍게 받을 수 있는 말, '팔자'란 것이 있는 덕분에 인생의 무게를 고스란히 되받는 대신, '팔자'란 핑계를 대며 옆으로 슬쩍 미뤄둘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가뜩이나 팍팍한 내 삶의 무게 속에 슬쩍 한 번 웃어줄 여유였다. 무엇보다 남 탓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누군가 미워하며 살아가기에 나는 죄가 너무 많고, 또 많은 죄를 지을 것이기에 당신을 미워하는 대신 나는 내 팔자를 쳐다보며 슬쩍 웃어준다. '저 사람이 저리 사는 것도 다 제 팔자 탓이야'하며 ... 김선태 시인의 "조금새끼"를 읽으며 나는 문득 '조금새끼'처럼 팔자 안에 갇히지도, 그렇다고 자유롭지도 못한 우리 네 삶의 편린 한 조각을 줍는다. 말 한 마디에 이처럼 삶이 오롯이 들어있지 않은가. 고요하고 쓸쓸하게... 삶이란 이처럼 한 마디 말로도 모두 표현될 수 있는, 별거 아닌데도 우리는 참 힘들게도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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