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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정희성 -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

- 정희성


한 처음 말이 있었네
채 눈뜨지 못한
솜털 돋은 생명을
가슴속에서 불러내네
  
사랑해
  
아마도 이 말은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다가
괜히 나뭇잎만 흔들고
후미진 내 가슴에 돌아와
혼자 울겠지
  
사랑해
  
남몰래 울며 하는 이 말이
어쩌면
그대도 나도 모를
다른 세상에선 꽃이 될까 몰라
아픈 꽃이 될까 몰라

*

'사랑'의 본령은 짝사랑이다.
나홀로 사랑한다.
설령 서로 똑같이 사랑한다고 해도
사람은 자신만 알 수 있기에
결국 상대의 사랑보다 자신의 사랑에 더 목매단다.
그래서 사랑은 마주보는 것일 수 없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라 말해도 사랑은 어긋남이다.
일치하는 시간은 짧고, 어긋나는 시간은 길다.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해도
결국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이 있는 법이다.
온힘을 다해, 온마음을 다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전하고 싶은 말 한 마디.
'사랑'은 끝끝내 그 한 마디를 목젖 아래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