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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 지옥처럼 낯선 지옥처럼 낯선 - 하종오 서른 줄 사내는 골목에서 이불을 주워 왔다 마흔 줄 사내는 폐차장에서 담요를 주워 왔다 오십 줄 사내는 쓰레기 하치장에서 카펫을 주워 왔다 그리하여 세 사내는 밤마다 온몸에 말고 지하도에 누워서 잠들고 낮마다 접어서 옆구리에 들고 역전에서 어슬렁거리고 아무리 담배가 당겨도 한 사람에게서 한 개비만 얻어 아끼며 맛나게 피웠다 서른 줄 사내는 꼭 한 번 카펫을 덮고 싶어했다 마흔 줄 사내는 꼭 한 번 이불을 덮고 싶어했다 오십 줄 사내는 꼭 한 번 담요를 덮고 싶어했다 그러면 세 사내는 꿈에 먼 집으로 돌아가 뜨거운 아랫목에 누워서 식구의 다리를 사타구니에 끼고 달게 잠자겠다고 말했지만 서로서로 바꾸어가며 한 번도 덮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가 날씨가 더워졌다 서른 줄 사내는 .. 더보기
OBS 경인 TV를 기다리며 - 2007년 10월 26일자 <경인일보> “우리 함께 사는 세상 iTV 경인방송”이란 로고송을 마지막으로 지난 2004년 12월 31일 경인지역의 유일한 지상파 TV였던 iTV 경인방송의 전파송출이 중단되었다. 경인방송은 허가 취소 이후 라디오 방송(SUNNY FM)만 남아 올 10월로 개국 10주년을 맞이했지만 TV방송은 정파(停波) 이후 3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시민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1997년 당시 인천방송 iTV가 출범하기 전까지 인천은 방송의 철저한 사각지대였다. 1995년 대구, 부산, 대전, 광주에서 민방이 출범하고도 2년 뒤에야 전주, 울산, 청주와 함께 인천 민방설립이 허가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보처는 인천이 서울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서울의 방송사들과 방송 지역이 중복된다며 경인지역 민방설립에 반대했다. 이 같.. 더보기
황규관 - 마침표 하나 마침표 하나 - 황규관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삶이 온갖 잔가지를 뻗어 돌아갈 곳마저 배신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건 작은 마침표 하나다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 소멸이 아니라 소멸마저 태우는 마침표 하나 비문도 미문도 결국 한 번은 찍어야 할 마지막이 있는 것, 다음 문장은 그 뜨거운 심연부터다 아무리 비루한 삶에게도 마침표 하나,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출처 : 황해문화. 2001년 여름호(통권31호) * “어쩌면 우리는 /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는 황규관 시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했다. 난 삶이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나이브(naive)한 허무주의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보고.. 더보기
촬영금지 - 구와바라 시세이 / 눈빛(1990) 촬영금지 - 구와바라 시세이 / 눈빛(1990) 지난 2005년은 여러모로 흥미 있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한 해였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자, 1905년의 을사조약 100년인 해이다(그 외에도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Don Quixote)』가 세상에 나온 지 4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안데르센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거기에 우리가 일본과 한일청구권협정(1965년)을 맺은 지도 40주년이 된다. 우리에게 해방과 지배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복원이라는 의미를 담는 사건들이 같은 끝자리수를 갖는 해에 모두 일어났다는 것은 시간차를 두고 생각해볼 여러 가지 것들을 던져준다.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 1936년생이니 어느덧 칠순이 넘은.. 더보기
올리버 스톤 - 살바도르(Salvador) 살바도르 (Salvador) 감독 : 올리버 스톤 출연 : 제임스 우즈 제작 : 1986 영국, 미국, 122분 올리버 스톤의 실질적 감독 데뷔작 올리버 스톤의 감독 데뷔작은 1981년의 공포영화 이었지만, 그를 할리우드의 이단아, 숨겨진 뇌관으로 만든 데뷔작은 였다. 이 영화가 중요한 것은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작업들과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문제작이었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들을 조망함으로써 가장 미국적인 감독이자, 미국적이지 않은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올리버 스톤은 미국 현대사의 명암을 정공법으로 파고드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런 감독은 아니었다. 그의 데뷔작인 은 컬트적인 구성이 돋보이긴 했으나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나.. 더보기
한대수 - 물 좀 주소 그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1987년 그의 노래들이 해금된 이후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대수는 여전히 가수라기 보다는 기인적인 풍모,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일반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가수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 가수로서 활동한지 30년이 지난 2001년 10월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두 번째 콘서트를 열 수 있었으리라. 머리에 꽃을 꽂은 청년이 초로의 중년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 머리에 꽃을 꽂은 사람은 그저 미치광이였을 뿐이다. LP시절 만났던 그의 첫 앨범을 CD로 다시 만났다. 청년 한대수의 노래를 당신에게 권해본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여 나의 목을 간질여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난 가겠소 나는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넘어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더보기
김경인 - 인형탄생기 인형탄생기 - 김경인 처음엔 고무 덩어리였죠. 나를 만든 아주머니는 백한 번째 얼굴을 완성하는 중이었어요. 엄마, 엄마, 엄마, 나는 거듭거듭 태어났습니다. 예쁜 이름이구나. 누군가의 목소리 속에서 나는 나를 처음 불러 봤어요. 백한 개의 포장 박스가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나는 속삭였어요. 얘들아, 나는 모든 이름을 사랑해. 처음엔 그저 고무 덩어리였죠.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떴어요. 그런데 얘들아, 나는 누구니? 같은 모양의 이파리를 잔뜩 매달고 문득 호수를 굽어본 나무들처럼 우리는 깜짝 놀랐구요. 눈코입은 미로를 따라 끝없이 달아났지요. 발자국은 언제 발견될까요? 지도를 버리세요. 유리창에 매번 다른 지문을 찍어 대는 눈발처럼 내 몸은 드문드문 변하고 있지만요. 아직은 다리는 두 개. 손가락은 다섯 .. 더보기
낸 골딘(Nan Goldin) 나는 조금 전 긴 복도에서 소독약 뿌리는 사내와 마주쳤다. 그는 긴 복도 회랑에 양철 소독통을 들고 복도의 양 옆 벽에 무색의 소독약을 뿌리며 나와 지나쳤다. 나는 이 글을 씀으로써 그를 잠시동안 기억하겠지만 그는 영국식 검은 군용 스웨터에 짙은 회색 목도리를 칭칭 감고 스쳐간 나를 아마도, 아마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 몇 해전부터 열화당에서 새로운 사진집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 시리즈로 열 권의 사진집 중 도로시아 랭과 유진 스미스, 가브리엘레 바질리코 등의 사진집을 새로 출간했다. 포장을 뜯고 집에 들고 가서 읽었다. 옛날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에 비해서는 월등히 뛰어난 인쇄 질과 판형, 그리고 자세한 캡션들, 비평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인쇄잉크 냄새를 킁킁 맡으며 나는 신간들이.. 더보기
1년 365일이 여성의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1년 365일이 여성의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99주년 세계여성의 날과 KTX 승무원들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 99주년입니다. 직원들이 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서 우리 국장님에게 뜬금없이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성인데도 잘 모르시더군요. 제가 “오늘은 세계여성의 날입니다.” 했더니 함께 식사하시던 다른 분이 “요즘은 365일이 모두 여성의 날인데, 별도로 여성의 날이 필요하냐?”고 하더군요. 연세 많은 분들이 요즘 대한민국 사회와 여성들을 보고 있노라면 1년 365일이 매일 여성의 날이란 표현이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단 생각은 저도 합니다. 2004년 9월에는 “성매매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률과 성매매알선 처벌에 대한 법률”이 시행되었고, 지난 2005년 2월 .. 더보기
논어(論語)-<학이(學而)편>10장. 溫良恭儉讓鎰之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夫子 溫良恭儉讓鎰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자금이 자공에게 묻기를 “부자(공자)께서는 어느 나라에 가시든지 반드시 그 나라의 정사에 대해 듣게 되는데 이는 스스로 구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준 것입니까?” 자공이 답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온화하고, 어질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겸양함으로써 얻으셨으니, 선생님께서 구한 것은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자공(子貢, BC 520 ?~BC 456 ?)은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 출신의 유학자로 공자가 위나라 망명시절에 문하로 들인 제자라고 추정된다. 그는 공문십철(孔門十哲) - 「학이」편 4장 소개 - 중 한 사람으로 재아(宰我)와 함께 언어에 뛰어난 재질을 지녔다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