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생애와 사상 | 파울 프뢸리히 지음 | 정민 옮김 | 책갈피(2000)
1919년 1월 15일 밤 9시경.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와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는 빌헬름 피이크와 함께 빌메르스돌프의 만 하더이더 거리에 있는 그들의 마지막 피난처에서 린드너 중위가 지휘하는 일단의 군인들과 그 지역 시참사회 첩자였던 메링이라는 하숙집 주인에게 체포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거짓 이름을 대었으나 그들은 이미 리프크네히트의 얼굴을 알아보고 뒤를 밟은 첩자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칼은 먼저 시참사회 본부로 끌려갔다가 이웃의 에덴호텔로 옮겨졌고, 잠시 후 로자와 피이크도 군대의 삼엄한 경계 속에 뒤따랐다. 칼이 호텔방으로 끌려들어오자마자 그의 머리통으로 소총 개머리판이 날아들었고,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잠시 뒤에 로자와 피이크는 다른 방으로 끌려 들어가서 심문을 받았다.
그들은 쓰러진 칼을 깨워 호텔 밖으로 끌어냈다. 호텔 문 앞에서 칼 리프크네히트는 오토 룽게에 의해 다시 소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두들겨 맞고 쓰러졌다. 그들은 죽은 듯 축 늘어진 칼을 강제로 일으켜 차에 실은 뒤 모아바트 감옥으로 이송하라는 명령을 수행하는 척 했다. 칼을 구금한 차가 티에르가르텐 인근의 호수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다시 칼을 차에서 끌어내리고 앞서 걷도록 명령했다. 칼 리프크네히트가 앞으로 몇 걸음을 옮기자, 하인쯔 대위, 리프만 중위, 하르퉁 소위, 폰 뤼트겐, 슈티게슐츠 등 6명은 그의 등 뒤에서 일제 사격을 가했다. 칼은 마치 도주하다 사살된 것처럼 꾸며졌다.
칼이 끌려나가고 잠시 후 로자는 포겔 소위에 이끌려 호텔 밖으로 나왔다. 문 밖으로 나온 로자의 두개골은 룽게의 개머리판에 두 번이나 얻어맞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축늘어진 채 트럭에 실린 로자는 다시 병사들에 의해 머리가 짖이겨지도록 얻어맞았다. 포겔 소위는 피투성이가 된 로자의 머리통에 한 발의 권총탄환을 박아 넣었다. 시체가 된 로자는 티에르가르텐으로 실려가 포겔의 명령에 따라 리히텐슈타인 다리위에서 란츠베르크 운하 물 속으로 던져졌다. 그녀의 시체는 1919년 5월 31일까지 물 속에 잠겨 있었다. 그 결과 세상은 "마르크스 이래 최고의 두뇌"를 잃었고, 독일 노동자 계급은 학살당했으며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불구덩이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붉은 로자", "독수리", "피투성이 로자"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0를 가리키는 별명은 무척 많다. 폴란드 출생의 유태계 여성이었던 로자 룩셈부르크. 그녀는 역사 속의 여성 중에 내게 단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다. 사회주의자였으나 오랫동안 스탈린주의가 주도하던 사회주의자들에게 무시당해왔던 로자 룩셈부르크. 실제 그녀의 죽음 이후 사회주의의 종주국이라고 자부하던 소련에서 그녀의 책이 출판되었던 것은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그녀의 명성에 비해 로자 룩셈부르크는 너무 뒤늦은 시기에 다시 재조명받게 되었다. 그렇게 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러시아 10월 혁명의 성공 직후 소련에서 사회주의의 몰락을 일찌감치 예언한 탓이다.
"친정부 인물만을 위한, 일당의 당원만을 위한 자유는 - 그들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 전혀 자유가 아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도 인정하는 것이 진짜 자유다. '정의'라는 개념에 매료되어서가 아니라, 정치적 자유는 정의에 입각할 때만이 비로소 온전하기 때문이다. '자유'가 어떤 특권이 된다면 자유의 효용성은 없어지고 만다."
그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의 자유도 인정하는 것이 진짜 자유라고 말하면서 소련사회주의가 마치 중세 교황과 교회의 무오류성을 받아들여 소련 공산당의 무오류성을 설파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 이후 실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소련에 의해 조직되고 강화된 코민테른이 저지른 수많은 오류와 반동성을 발견한다. 마르크스, 레닌에 의해 성공한 혁명은 그 이후 스탈린의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서서히 고사되어 갔고, 마르크스주의는 경전이 되어 높은 성벽에 볼모로 갇히게 되었다. 노동자는 고립되었고, 민주주의는 상실되었다. 로자는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독재를 행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라는 것은 노동자의 자기해방이 아니면 안 된다. 누구도 당신을 위해 사회주의를 가져다 줄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노동자의 자기 해방은 이제 명패가 떨어진 채 아무도 줍지 않으려는 팻말이 되고 말았다.
-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의 죽음을 추모하는 레닌(1920)
현실 속의 사회주의는 그렇게 박제가 되어 죽어갔지만 그녀가 세상을 뜬지 80여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 옛 동독지역 베를린에 있는 프리드리히 스펠데 묘지에는 여전히 추모객들이 놓고 간 수천 송이의 카네이션이 붉게 수놓고 있다. 그녀는 철저한 사회주의자였고,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을 계승하여 그로부터 한발짝 더욱 진보시킨 인물이었다. 이 책 <로자 룩셈부르크 생애와 사상>은 그녀에 대해 쓰여진 최초의 평전이다. 이 책의 저자 파울 프뢸리히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동시대의 인물이자, 그녀의 동지였다. 이 책 자체가 겪은 우여곡절은 그대로 로자의 생애와 사상이 겪어야 했던 우여곡절과 흡사했다. 1919년 로자가 죽은 뒤 그녀에 대한 자료들도 역시 조직적인 은폐와 멸실 과정을 거쳐 소멸(1933년 괴벨스는 그녀의 저서들을 멸실하도록 했다)되었고, 자료의 상당수가 소련으로 옮겨졌으나 소련은 그녀에 대한 평가에 대해 인색했다. 스탈린주의에 젖은 사회주의자들 역시 로자의 재부각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했다. 그녀는 동지였던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두 번 죽었다.
프뢸리히는 리히텐부르그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프랑스로 망명하여 로자에 대한 저작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938년에서 39년 사이 제2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 저작은 프랑스에서 독일어판으로 출판되었으나 곧이어 전쟁이 터진다. 그는 다시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영문판으로 다시 로자 평전을 출판하게 된다. 1940년의 일이었다. 프뢸리히 자신은 전쟁이 끝난 뒤인 1951년까지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1951년 귀국할 수 있었고, 1953년 3월 1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죽었다.
로자 룩셈부르크. 러시아의 식민지였던 폴란드에서 태어났고, 여성이었고, 유태인이었으며 어려서 병을 앓아 다리를 절었다. 그녀는 사회적 약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뛰어난 사상가였고, 혁명가였으며, 가슴 따뜻한 동지였다. 그녀는 토론의 자리에 임해서는 누구보다 열렬한 목소리로 개량주의, 수정주의를 비판했고, 동료일지라도 옳지 않으면 가차없이 공격했고, 때로 예의없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서로 입장이 다른 장 조레스와 돈독한 우정을 나눴고, 같은 여성 동지로서 클라라 체트킨("여성의 날"을 제창한 바로 그 사람)과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로자는 "무엇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지 아시겠어요? 나는 당의 사람들이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너무 상투적이고, 딱딱하고, 진부합니다....다른 시대는 다른 서정시를 갖기를 원합니다."며 고리타분한 주의주장으로 가득한 동료들을 비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합법성이라는 것이 단지 "지배계급의 폭력"을 은폐한 결과임을 설파했다. 그녀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지녔으나 동시에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이 처한 비참한 일 때문에 세계의 비극을 잊는 일도 결코 없었다.
"혁명은 냉혹하면서도 무한한 인간애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사회주의의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기존 세계는 타도되어야 하지만 모든 고통과 눈물은 고발되어야 한다. 감정 없이 하찮은 벌레라도 짓밟는 엄청난 행위를 저지르는 인간은 유죄판결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냉혹하면서 동시에 무한한 인간애를 가진 혁명'이란 형용모순이 결합된 아름다운 이상이란 냉혹한 현실과 현실 속 인간에 대한 실천가능한 대안이 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을런지. 그녀의 죽음 앞에 다시금 곱씹게 된다.
'REVIEW > 인물/평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승희 - 정수웅, 눈빛(2004) (0) | 2011.01.21 |
---|---|
요절 - 조용훈 | 효형출판(2002) (0) | 2011.01.17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미셸 슈나이더 | 이창실 옮김 | 동문선(2002) (2) | 2011.01.06 |
청년아 너희가 시대를 아느냐 - 민윤식| 중앙M&B(2003) (0) | 2010.12.22 |
티토 - 재스퍼 리들리 지음 | 유경찬 옮김 | 을유문화사(2003) (0) | 2010.12.01 |
김민기 - 김창남, 한울(한울아카데미), 2004. (0) | 2010.11.30 |
위대한 남자들도 자식때문에 울었다 - 모리시타 겐지 | 양억관 옮김 | 황소자리(2004) (0) | 2010.11.17 |
역정(나의 청년 시대) - 리영희 저작집 6 | 리영희 (지은이) | 한길사 | 2006 (0) | 2010.10.29 |
카트린 칼바이트 - 20세기 여인들 : 성상, 우상, 신화 (0) | 2010.09.14 |
위대한 아웃사이더:세상을 바꾼 지식인 70인의 수난과 저항-김삼웅 (0) | 2010.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