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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만화/애니

북두의 권 - 부론손 글/ 데츠오 하라 그림

북두의 권 - 부론손 글/ 데츠오 하라 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199*년 핵의 화염이 휩쓸고 지나간 지구, 온통 잿더미의 폐허로 변해 버린 지구는 인류의 문명이나  질서 따위는 핵의 화염에 휩쓸려 사라지고 지구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이들과 무질서 속에서 힘에 의해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하는 이들의 폭력과 폭력, 힘과 힘의 대결이 펼쳐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것이 <북두의 권>이 보여주는 기본 설정이다. 분명 1979년 호주의 밀러 감독에 의해 형상화된 <매드맥스>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북두의 권>이 <매드맥스>의 흔한 아류작들과 달리 수백만부의 판매량을 자랑하는 인기작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은 같은 형태의 디스토피아를 다룬다고 할지라도 이 만화 <북두의 권>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형식이란 측면에서 분명 <매드 맥스>를 압도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스케일 면에서 그렇고, 동양적인 무협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도 크게 어필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남성 활극으로서의 통쾌한 액션과 회를 거듭될수록 새롭게 밝혀지는 비밀과 강대한 무공을 지닌 적의 등장이란 RPG적인 요소 역시 만화 <북두의 권>이 영화 <매드맥스>를 압도하는 대목이다.

먹을 음식도, 마실 물도, 신선한 공기도 없는 죽음과 어둠이 공포와 폭력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들의 뒷덜미를 노리는 것은 강한 힘 한 가지만을 믿고 죄없는 선량한 이들을 죽이고 괴롭히는 집단들이다. 이때 가슴에 북두칠성의 7개 흉터를 지닌 사나이 켄시로는 사람들에 의해 세기말 구세주 전설로 불리우며 이들 집단을 '북두신권'이라는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암살권을 사용해 쳐 없앤다.

그리고 그는 린과 바트에게 작은 도움을 얻어 이들 소년 소녀를 거두어 데리고 다닌다. 다시 기력을 회복한 켄시로는 약혼자 유리아를 찾기 위한 방랑의 길을 떠나고 그 와중에 무수한 강적들을 만나 그들의 협력을 얻거나 공격을 받으며 그들 하나하나의 마음을 가슴 속에 짊어진다. 일본의 메이저 출판사인 집영사에서 지난 1984년 출판해 수백만부의 히트를 낸 이 작품은 그동안 정식 계약 없이 해적판으로 나돌았었다. 나 역시 처음 <북두의 권>을 읽은 것은 지난 80년대의 일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 한 번 짓지 않는 주인공 켄시로는 해적판에서는 '라이거'라는 이름으로 일본풍 이름인 '켄시로'를 대체했는데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시리즈에서는 다시 본디 이름인 '켄시로'로 사용된다.



총 22권으로 재출간된 이 만화를 엊그제 며칠동안 읽으면서 잠시 예전 80년대의 추억에 젖었었다. 북두와 쌍벽을 이루는 남두성권의 의성 레이와 인성 슈우 그리고 이들과 얼기설기 얽혀 있는 숙명이랄까 하는 비장미들은 이 만화가 꽃미남이 횡행하는 요사이 정서로는 참 이해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일자전승이라는 숙명을 지닌 대결로서 북두신권을 사용하는 형제간의 쟁투를 그린 1부가 북두신권의 맏형이자 권왕이라 불리운 라오우와의 대결이라면 2부에서는 일종의 외전이랄 수 있는 수라섬의 대결과 라오우의 아들로 하여금 북두신권의 계승자로 삼아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려고 한다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만화 <북두의권>의 매력적인 요소들은 일단 서구의 판타지에 대응할 수 있는 나름의 동양적인 판타지이자 현대적인 계승을 이 작품 속에 녹아들게 했다는 것에 있다. 물론 서구의 장대한 판타지의 역사와 용어들에 비해 동양적인 판타지는 아직 연구되어야 할 분야가 더욱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동양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무협지적인 요소들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낯설되 어색하지 않은 정도의 양념으로 잘 녹아들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다종다양한 캐릭터들의 안배이다. 90년대 일본 만화 최고의 히트작이랄 수 있는 <슬램 덩크>와 <드래곤 볼>의 공통된 특징. 특히 <슬램덩크>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은 적절한 캐릭터들에 있다. 서태웅이라는 인물부터 강백호 그리고 정대만 등등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비록 적으로서 게임에서 맞부딪치더라도 다들 나름대로 그럴 만한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우리는 마치 RPG게임에서 전형적인 전사 타입의 캐릭터, 마법 캐릭터, 궁수 캐릭터와 같이 <슬램덩크>나 <드래곤볼>을 보면서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인물 하나쯤은 마음에 품을 수 있도록 안배해주고 있는데, 어찌보면 <북두의권>이 그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 이 작품은 선과 악의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남두성권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장성 사우더, 요성 유다, 순성 신 등등의 인물은 물론 1부 최고의 악역이랄 수 있는 '라오우' 역시 알고 보면 그만한 이유와 명분을 가지고 싸워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독자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특화된 캐릭터 안에서 자신의 성격에 비추어 호감의 정도를 갖고 좋아하는 인물들을 품을 수 있도록 안배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각각의 캐릭터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나름의 탄탄한 스토리와 폭력적이지만 잔인하다기 보다는 통쾌하게 여겨지는 그림체. 물론 개인적으로 <북두의권>은 라오우와의 대결에서 끝을 맺었더라면 정말 걸작의 반열에 올랐으리라 생각하지만 인기작인 만큼 작가 개인의 의도대로 스토리를 완결짓기는 어려웠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이 작품의 스토리 작가인 부론손 (Buronson)은 일본 공군 자위대 레이더 병과의 출신으로 1969년 군을 제대한 뒤 '히로시 모토미야' 밑에서 스토리 문하생으로 스토리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이후 남성 판타지물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료이치 이케가미 등과 손잡고 <휴먼>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고, 테츠오 하라와 손잡고 만든 <북두의권>에서는 그야말로 새로운 판타지의 세계를 열었다. 비록 상업적인 고려에 의해 스토리가 후반부에 가서 쓸데없이 길어졌다는 혐의는 있지만 이 작품은 전작이 짜임새 있는 진행과 의미있는 복선들로 전체 진행이 순조롭게 진행되어간다.

<북두의권> 캐릭터 구성에 있어서 선과 악은 생김새로 명확하게 구분되며 특히 눈이 좌우한다. 이 만화의 작가 테츠오 하라는 매우 강렬한 선과 터치를 통해 액션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신체의 비례나 눈동자의 처리 등에 있어서는 순정만화의 그것을 차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1961년생으로 요시히로의 문하생 및 고이케 가즈오의 극화촌숙(劇畵村塾)을 거쳐 1986년 '소년 점프 증간호'에 <철의 돈키호테 (매드 파이터)>를 발표하며 데뷔한 그는 1987년 <소년 점프>에 연재하기 시작한 <북두의권>이 대호평을 받자 <주간 소년 점프>로 옮겨 계속 연재하며 명성을 얻었다. 표정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물론 액션 장면에서 공격적인 표정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켄시로의 눈빛은 슬픔을 잔뜩 머금은 소녀만화의 주인공의 그것과 흡사하게 그려지며 켄시로와의 대결에서 쓰러지는 악한들의 회한과 눈물 장면에(이 만화는 대개의 터프 주인공들과 달리 켄시로가 유독 많이 우는 울보 캐릭터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르면 좀전의 사악한 모습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선량하면서 회한과 슬픔으로 가득해지곤 한다. 그런 눈의 처리는 이 작품의 특이한 매력이기도 했다.

<북두의권>을 보면서 나는 어설프게나마 <은하철도 999>를 떠올렸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분명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넘쳐나는 비장미와 신파적인 대사들. 지금의 관점으로 보자면 여성은 보호되어야 하는 나약한 존재로 비춘다거나 지나치게 모성애적인 역할로 성격이 규정되어 있다는 식의 비판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와 같은 비난은 <은하철도 999>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은하철도 999>에서 어린 테츠로(철이)가 머나먼 안드로메다 성운에 이르는 여행 길에 어른이 되듯 <북두의권>에서도 켄시로는 수없이 많은 강적들과 대결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가게 된다. 어쨌든 소년은 길 위에서 울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고 이 만화는 말하는 것 같다. 소년은 눈물을 통해, 눈물의 의미를 깨우침으로 해서 스스로의 인생에 책임지는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