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손님 : 보통시민오씨의 548일 북한체류기 -상.하』 | 오영진 | 이미지프레임(길찾기) | 2004
작가 오영진은 요샛말로 하자면 "투잡(two job)"이다. 그는 만화가이면서 동시에 한전 직원이다. "남쪽손님", "빗장열기"는 남북한이 분단된 것처럼 두 권으로 분책되어 있으나 사실상 하나의 책이다. "보통 시민 오씨의 548일 북한 체류기"란 부제를 지니고 있지만 오씨가 보통시민이라는 건 자평이지, 독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작가 황석영이 "보통 시민 황씨의 북한 체류기"란 책을 냈다고 치자. 누구도 황석영을 보통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영진의 보통 시민이란 말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보통 시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체류기"일 수는 있겠다. 알라딘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지은이 소개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00년 경수로 건설을 위해 북한에 파견되어 1년 6개월 동안 신포에서 근무했다.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이 함께 생활하며 느낀 북한 사람의 이미지와 실제 생활상이 진솔하게 담겨져 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진실이 아니다. 남한 사람이 북한에 가서 장장 548일을 살다 오는 일이 과연 보통의 경험일 수 있을까? 그 자체가 특별한 사건이므로 우리는 이 책을 흥미있게 살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북한 사람의 이미지와 실제 생활을 진솔하게 살필 수 있는가? 아마 그것도 진실은 아닐 것이다.
어느 나라든 외국에 설치된 재외공관은 그 나라 영토로 간주된다. 공해상을 순항하고 있는 군함 역시 떠다니는 그 나라 영토로 간주된다. 작가 오 씨가 북한 신포에 머물면서 관찰한 경험이 소중하지 않다거나 진실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늦게 혹은 너무 뻔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휴전선으로 갈린 남북 분단의 역사 속에서 서로 이질적인 체제를 구축하여 살아온 우리 민족이 있다. 그런 우리가 북한 영토 안에 또다른 작은 장벽을 치고, 그 안에 작은 남한을 건설하고, 북한 주민 가운데 일부분을 접촉하여 만들어 낸 책은 작가 자신의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 처한 환경 탓에 또다른 스테레오 타입을 양산해낸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남한 사람 오 씨의 눈에 투영된 북한 사람의 삶을 본다. 그것도 극히 일부만을...
이렇게 글을 적고 있다고 해서 내가 북한을 잘 알고 있는가? 당신은 북한을 잘 알고 있는가? 나는 오영진의 이 만화를 읽는 내내 그런 갈급증에 시달렸다. 서울 가서 남대문을 보고 왔는지, 동대문을 보고 왔는지 가보지 않았으니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들으며 유추해봐야 한다. 남대문에 남대문이 아니라 숭례문이라고 써 있다고 그가 말해주면 그렇다고 믿을 것이고, 숭례문이 아니라 남대문이라 써 있다라고 하면 또 그리 믿을 수밖에 달리 어찌 해 볼 재간이 없다. 남한은 오랫동안 북한을 감시해왔음에도, 지금 북한 잠수함이 동해안을 넘나든다고 하는데, 그것을 우리 해군이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제공해주는 정보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해서 그것이 사건이 되고 문제가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은 국가적으로는 미국이 제공해주는 정보에 의존하고, 개인적으로는 국가가 제공해주거나 국가체제(언론도 포함해서)가 걸러주는 정보에 의존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우리들 중 누가 과연 북한을 잘 알고 있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고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인가? 아니면 오랜 기간 북한을 연구하고, 관찰해온 남한의 북한전문가들인가?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고,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치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 좀더 세분화해봐야 서너 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다. 그것은 북한을 경쟁상대, 주적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장차 하나의 민족으로 공동의 운명을 짊어질 대상으로 바라볼 것인가?로 양분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측, 우리의 시선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다.
오영진의 책은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운 듯 보인다. 마치 "아, 거기에도 우리랑 같은 사람이 살고 있었네" 타입의 이 만화 책은 북한이란 우리에게 국가도, 괴뢰도 무엇으로도 정의하기 곤란한, 해체할 수도, 폭발시킬 수도 없는 처리곤란한 불발탄에 대해 갑작스레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북한을 주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도, 북한을 공동운명체로 인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뭔가 결여되어 있다. 그건 뭔가? 글쎄, 과연 뭘까? 나는 이 책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들의 고정된 시선을 새삼스레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에게 북한 체제와 상관없이 북한 사람들은 과거 분단 이전부터 고착화된 이미지들과 분단 이후 조금씩이나마 그네들의 삶에 대해여 소개되면서 알게 된 몇 가지 전형들을 확인시킨다.
북한 사람들은 사회주의 체제 살다보니 아무래도 자본주의 체제에 사는 우리들 보다 덜 영악하다. 북한 사람들은 토론을 많이 하다보니 남한 사람들이 자칫 말을 잘못했다가는 논리적으로 밀린다. 가난하지만 자존심은 강하다. 생활력이 강하다. 남남북녀라더니 북한 여자들 예쁘다. 이런 말들을 어디서 보았더라. 그러고 보니 남북한 관계에 조금씩 햇살이 비추면서 우리 언론이 만들어주고, 널리 유포시킨 북한 사람들의 이미지들이다. 서구의 동양에 대한 고정된 시선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했을 때, 이 책은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제공된 북한에 대한 남한의 오리엔탈리즘이다. 다만 이 책의 매력은 만화라는 장르가 주는 손쉬운 접근성과 문자보다는 이미지에 의존하는 매체 특성이 주는 너그러움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들을 제외하고 이 만화가 주는 에피소드들은 이제 너무 낯익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악평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은 북한에 대한 학습만화라고 하기엔 이를 뒷받침해줄 서사가 부족하고, 그냥 명랑만화로 읽기엔 민족모순은 너무나 첨예하다. 작가 오영진은 역사와 오락 사이에서 우리 민족은 남북공조와 이념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박재동은 이 만화의 추천의 글에서 “이념으로 접근한 것도 아니고 역사로 접근한 것도 아닌 바로 ’사람‘으로 접근한 시선”이라고 말하지만 바로 그 사람이 여전히 문제다. 우리는 북한 사람을 너무 모르거나, 혹은 너무 잘 아는 척하고 있다. 과연 우리의 편견없음은 북에 대한 편견이 무언지조차 모르는 편견은 아닐런지...
* 지금 이 만화를 다시 보니 문득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다고 말해야겠다. 돌고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온 머나먼 남북관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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