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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만화/애니

천재 유교수의 생활 -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

천재 유교수의 생활 -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


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매우 많다. 사람, 인간, 민중, 군중, 대중, 인민, 서민 등등... 때로는 정치적으로, 학문의 엄밀성을 위해 용어는 구분되고, 구분될 때마다 각각의 용어들은 별도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람 혹은 여러 사람들을 일컫는 말 가운데 가장 나중에 온 말은 무엇일까? 민중? 하기사 우리가 민중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나중에 발견되었으며, 가장 나중까지 논란의 여지로 남을 인간은 '개인'일 듯 싶다. 최근 역사학계의 새로운 조류로 주목받기 시작한 '일상사'에서(이와 관련한 책으로 몇 해 전 청년사에서 출간된 『일상사란 무엇인가』와 개마고원에서 출간된 『나치시대의 일상사』 등이 있다. 더 좋은 책들도 있지만...) 다루는 인간 또한 개인이라 할 수 있다. 일찌기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만행이 히틀러와 같은 소수 권력자들뿐 아니라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에 내재된 '악'에 의해 가능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때의 일상 역시 개인에 해당한다. 

앙리 르페브르는 일상을 '혁명 시도가 실패하는 원인이며 결과' 로 봤다. 일상이란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는 다람쥐 쳇바퀴돌듯 반복된다. 그렇기에 일상은 우울한 것이다. 그러나 르페브르의 말처럼 모든 혁명은 일상에서 비롯되었고, 결국 실패하는 원인도 일상에서 비롯된다. 일상에서 시작되지 않는 변화는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며 일상에 매몰되는 변화 역시 아무 것도 성취해내지 못한다. 일상의 무기력증은 일상을 변화시킨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반복적으로 체득하게 한다. 일상성의 의미 속에 무기력하게 지배당하는 개인과 그와 같은 소비적 일상을 거부하는 개인, 이 개인이 주체적인 자아를 회복하는 것을 르페브르는 '일상성의 혁명'이라 불렀다. 

▶ 유택 교수를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손녀딸 하나코와 유택 교수.
야나기사와 요시노리(Yanagisawa Yoshinori 柳澤良則) 교수가 원저상 유택 교수의 이름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유택 교수만 한국식으로 한자어 발음을 따서 작명되어 있고, 그의 가족이나 나머지 사람들 이름은 개명되지 않고 일본 이름 그대로 사용된다. 야나기사와 교수라고 하는 것보다야 유택 교수가 편하긴 하다. ^^

'야마시타 카즈미'의 만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읽다보면 문득 이런 일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읽는 내내 감탄하기도 하고, 때로 감동받기도 하지만 기억에 남는 극적인 대목은 쉽게 찾을 수 없는 만화다. 이 작품에도 물론 사건이 일어나고, 갈등이 빚어지긴 하지만  사건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된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철저하게 캐릭터에 의해 진행되는 만화란 점이 다른 작품들과 가장 큰 변별점이 된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의 주요 캐릭터들 우선 주인공 유택 교수가 있다. 그는 Y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매우 고지식한 인물이지만 마음이 따스하고 도량이 넓은 인물이며 무엇보다 매사 원칙을 세워 공부하는 일을 즐긴다. 그리고 그의 부인 마사코, 평범하지만 과연 평범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넷째(막내) 딸 세츠코, 크게 튄다고 할 수 없지만 유택 교수의 딸 아니랄까봐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대찬 면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 히로미츠, 그리고 외할아버지를 무척 존경하여 유 교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흉내내는 하나코가 있다. 아, 고양이 타마도 빼놓을 수 없다.
 

Y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유택을 다른 이들과 확실하게 구분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의 신념이다. 유택은 고지식하다 못해 확실한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이런 개인적 신념은 그의 가족은 물론 그가 속해있는 다른 사회의 융통성이 과다한 인물들과 늘 갈등을 빚고, 충돌을 일으킨다. 만약 이 충돌이 독자들로 하여금 답답하다고 느끼게 만든다면 이 작품이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얻지는 못했을 게다. 작가 야마시타 카즈미는 유택을 이 위태로운 경계 선상에서 오락가락하게 만들면서 이 작품의 소소한 재미와 교훈을 유발시킨다. 유 교수의 준법 정신, 바르게 살기 자세는 타인을 겨냥함과 동시에 그 자신을 겨냥한다. 바르게 살기를 타인(혹은 독자)에게 권유한다는 일은 종종 위험한 경험임을 잘 아는 독자를 위해 작가는 유택의 면모들을 먼저 살피고 이해하도록 권유한다. 
 

예를 들어 바른 생활 사나이인 유 교수는 취침 시간 9시를 칼 같이 지키는 인물로(그런 의미에서 유 교수의 모델은 '칸트'일지도...), 그 시간을 넘기면 마치 신데렐라의 황금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듯 그대로 잠들어 버린다든지 하는, 결함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 자신의 원칙이 남을 겨냥할 때나 자기 자신을 겨냥할 때나 변함없다는 점에서 그는 타인에겐 바르게 살기를 강요하면서도 그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위선자들과 격을 달리 한다. 무엇보다 유 교수의 바르게 살기가 그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피해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기에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유 교수의 좌충우돌을 지켜볼 수 있다. 게다가 그의 이 융통성 없음의 신념이 타인에 대해서는 배려와 관심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유 교수의 그 인간적인 매력에 흠씬 젖어들게 되는 것이다. 작가 야마시타 카즈미는 만화적 관점에서 유 교수를 비롯한 캐릭터 묘사에 특히 각진 부분보다는 전체적으로 원만한 선을 통해 독자들이 시각적으로도 편안하고 깔끔함을 느낄 수 있도록 장치해두고 있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이 주는 매력의 또 한 가지 요소는 이 작품이 지닌 풍부한 드라마성이다. 작가는 TV드라마처럼 일정한 분량 동안 기승전결을 짓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대신 어떤 이야기는 상당히 긴 분량의 이야기로 늘이고, 어떤 이야기들은 짤막한 에피소드로 완결짓는 신축성 있는 방식을 이용해 만화책에 담아내고 있다. 이것은 일본의 만화들이 대개는 잡지에 연재되는 것을 다시 단행본으로 엮어낸다고 했을 때 작가 야마시타 카즈미의 독특한 고집이 관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야마시타 카즈미는 유택을 통해 현재로부터 일본의 과거를 오가며 - 동시에 유택은 일본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청년들을 길러내는 대학 교수다 -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유 교수 자신이 희극적인 캐릭터도, 비극적인 캐릭터도 아닌 탓이지만, 유 교수의 캐릭터 자체도 희비극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그런 유 교수의 캐릭터 덕에 가끔씩 과거로 피드백하는 순간, 진지하게 몰입을 요구받는 순간에도 우리는 편안하게 유 교수를 따라 건너갈 수 있다. 그렇기에 수많은 캐릭터들이 오가는 상황에서 독자들이 지루하다거나 어색하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  


물론 이 작품의 제목 자체가 이미 말하고 있는 것처럼 유 교수는 천재의 일면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처음 쳐 본 게이트볼 게임에서 그는 마치 '맥 가이버'가 처음 당구 게임을 경험하면서 그가 지닌 물리학적인 지식들을 이용해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처럼 유 교수도 그런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작품 전체에서 두드러지는 건 유 교수의 천재적인 면모보다는 그와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삶 그 자체다. 유 교수가 이런 평범함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비범함을 보이는 대목은 그의 천재성보다는 그가 늘 배움을 갈구하는 인물이란 거다. 그가 어떤 사람을 만나 그의 문제를 해결해줄 때나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 갈 때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들은 "나는 지금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배운 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와 같은 말이다. 그에겐 세상 모든 것이 배울 거리들로 가득하기에 심심할 겨를이 없다. 

우리는 일상을 늘 진부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로부터의 일탈을 꿈꾼다. 먹고, 마시고, 싸고, 자고, 노는 모든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다람쥐 쳇바퀴란 표현이 잘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은 그물보다도 더 촘촘하게 짜인 인간 관계와 사회의 그물망에 포섭되어 있다. 아주 작은 부분 하나까지 권력 관계와 이해 관계로 얽혀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일상은 하루하루 무의미한 경험의 연속으로 비춰지고, 삶은 조각난 파편처럼 아무 의미를 얻지 못한 무엇으로 개인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바흐친으로부터 비롯된 민중 혹은 대중의 일상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이들도 있다. 앙리 르페브르, 미셀 드 세르토 등과 같은 문화연구자들은 일상이 단지 파편화된 개인이 권력 관계 속에서 수동적으로 무기력한 삶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틈바구니 속에서도 이에 대항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즉, 천재 유 교수처럼 늘 무언가 배우는 이, 스스로 주체적인 자아로 해나가는 이에게 일상은 무기력한 삶의 반복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환희의 새로움을 경험하는 순간이 된다. 

일상, 그것은 혁명에 대해 품고 있는 환상처럼 혹은 삶의 진실한 측면이 그러하듯, 불꽃처럼 일순간 환하게 타올랐다가 꺼져버리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이 혁명의 미래라면, 일상은 바로 미래의 어제인 것이다. 천재 유 교수가 주는 가장 아름다운 매력은 일상의 환희, 일상의 재미가 어떤 순간 점화하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는데 있다.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이 스스로 깨닫고 실천에 옮길 수만 있다면 일상의 주인은 다시 당신이다. 지금 아주 작은 일 한 가지를 스스로를 위해 먼저 해주라. 잠깐 책상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이제 막 움트는 새싹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는 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