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다

- 김해자


전태일기념사업회 가는 길
때로 길을 잃는다 헷갈린 듯
짐짓 길도 시간도 잊어버린 양
창신동 언덕배기 곱창 같은 미로를 헤매다 보면
나도 몰래 미싱소리 앞에 서 있다
마찌꼬바 봉제공장 중늙은이 다 된 전태일들이
키낮은 다락방에서 재단을 하고 운동 부족인
내 또래 아줌마들이 죽어라 발판 밟아대는데
내가 그 속에서 미싱을 탄다 신나게 신나게 말을 탄다
문득 정신 들고나면 그 속에 내가 없다 현실이 없다
봉인된 흑백의 시간은 가고 기념비 우뚝한 세상 거리와
사업에 골몰한 우리 속에 전태일이 없다 우리가 없다
회의도 다 끝난 한밤중
미싱은 아직도 돌고 도는데

<출처> 김해자, 『황해문화』, 2005년 겨울호(통권49호)

*

내가 아직 ‘바람구두’라 불리기 전에 나는 떠돌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용 잡부로 떠돌던 시절,
곰빵(등짐 지는 것)에 질벽돌 4~50개는 거뜬히 지어 나르던 내가 있었다.
쓰미(벽돌쌓기)부터, 미장, 방수까지 못하는 게 없었다.
내 땅만 있었다면 나는 혼자 집도 지었을 것이다.
목수 데모도(조수)부터 시작해서 처음 못 주머니를 차던 날,
나는 한 사람의 기공이 되어 기뻤다.
일당이 배로 올랐으므로.
오야지가 사주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마시며 흐뭇했다.
나는 왜 계속해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지 않았을까?
그 때 나는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고 믿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두툼해진 뱃살을 걱정하며
그 시절보다 월등하게 풍족한 삶을 누린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가야만 한다고 믿었던 길을 기억하지 못한다.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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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11 11:53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신성한 노동 어쩌구 하면서 공사장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여자라서 벽돌을 반통만 지면 되었는데 평소 코끼리라 불리우는 제가 딱 3일 하고 꼬박 1주일 앓아 누웠습니다. 과외 알바들도 모두 못가고 엄마가 대체 어디가 아프냐는데 대답도 못하면서요. 공사장 노동자의 일당이 다른 것에 비해 좀 센 것 너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저는 더이상 노동 어쩌구 함부로 말 못하겠더군요. 너무 힘들어서요. '신성한 노동'이런 말 외치던 그때 그 마음을 한번 떠올려 보았습니다.

    • 2011.01.17 09:28 신고

      원래 막노동이란 것이 처음 보름 정도가 무척 견디기 힘들어요.
      제 기억에도 처음 며칠동안은 정말 끙끙 앓아가며 했던 것 같네요.
      나중에 그렇게 3~4년 세월 보낸 뒤 대학 들어가고 나니
      이번엔 반대로 아침 참, 점심, 오후참, 저녁...
      이렇게 식사 끼니만 늘어나서 도리어 살만 찌고...ㅋㅋ

      그런데 노동이 과연 신성하더이까?

    • 2011.01.18 09:28

      그 여름의 3일보다 웨이트리스할 때 상대한 짚시들의 빳빳한 신권 지폐와 흑인들의 리버스레이시즘의 경험이 더이상 모든 노동이 '신성'하다고 예쁘게 말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그런 말 하기에 제가 너무 세상에 닳아버렸네요. 노동의 가치를 쉼없이 높이는 분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2011.01.19 11:17 신고

      흑인들의 역인종주의는 알겠는데 집시들의 빳빳한 신권 지폐는 왜요?

    • 2011.01.20 12:08 신고

      하하, 글쎄요.
      율님의 개인적인 경험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서 집시들이 멋있는 건데요.
      집시들은 일평생 저축이란 걸 모르고 산다하지요.
      평생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리고 저축통장을 만들려면 필요한 서류들도 많이 있잖아요.)
      축적되는 과정에서 생긴 그들만의 문화인 셈인데,
      그네들이 몸에 걸친 명품이 바로 그들의 저축이고,
      가난한 날이 오면 몸에 걸친 명품과 보석들을 팔아서
      연명한다고 들었습니다.
      현세의 쾌락과 즐거움을 가장 우선하는 것도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오늘날의 집시가 과거의 그들과 같을리는 없겠지만 말이죠.

    • 2011.01.21 18:08

      제가 머물던 조지아에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집시 무리가 있었어요. 내부 사람들끼리만 결혼을 한다던데 그래서인지 참 서로 많이 닮아있고 여자 비율이 절대 절대 높았어요. 대게 남자들은 밖으로 돌며 건축일을 하는데 여자들은 아주 가난 아기들까지 모두 화장을 하지요 그들은 꼭 신권지폐만 사용해요. 명품으로 치장하고 돈뭉치를 들고 식당에 와서는 '돈자랑'을 하지요. 그 소리였어요. 집시에 대해 보헤미안이라는 일종의 환상이 있었는데 이 특이한 무리에 제의 환상을 하나 잃었어요.

  2. 2011.01.11 23:07

    우와! 미장 & 방수라는 그 위대한 기술을 습득하고 계셨다니! 나는 지난 여름 인력사무소 가서 "미장할 줄 압니다!" 라고 뻔뻔히 지껄였다가 현장가서 오야지한테 미장칼로 배갈릴 뻔 했어요. 벽에다 예술을 펼쳐 놓는 바람에..헤헤

    언제 기회되면 기술 한 수 부탁 ^^

    • 2011.01.17 09:27 신고

      칼 놓은지 어느덧 2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군요.
      알려드리고 싶어도 알려드릴 만한 기술이 없을 거예요.
      그 무렵 이제 막 머리 올린 어린 기술공이었다가
      얼마 안 되어 그 세계를 떠나게 되었으니까요. ^^
      그나저나 미장칼로 배 가르려면 한참 고생했어야 할 듯...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