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게와 잉 사이
- 이원규
전라도 구례 땅에는
비나 눈이 와도 꼭 겁나게와 잉 사이로 온다
가령 섬진강변의 마고실이나
용두리의 뒷집 할머니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겁나게 추와불고마잉!
어쩌다 리어카를 살짝만 밀어줘도, 겁나게 욕봤소잉!
강아지가 짖어도, 고놈의 새끼 겁나게 싸납소잉!
조깐 씨알이 백힐 이야글 허씨요
지난 봄 잠시 다툰 일을 얘기하면서도
성님, 그라고봉께 겁나게 세월이 흘렀구마잉!
궂은 일 좋은 일도 겁나게와 잉 사이
여름 모기 잡는 잠자리 떼가 낮게 날아도
겁나게와 잉 사이로 날고
텔레비전 인간극장을 보다가도 금세
새끼들이 짜아내서 우짜까이잉! 눈물 훔치는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
허공에라도 비문을 쓴다면 꼭 이렇게 쓰고 싶다
그라제, 겁나게 좋았지라잉!
출처 : 『황해문화』, 2009년 봄호(통권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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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남의 혼사에 대신 축의금을 전하기 위해 서울 강남의 모 호텔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낯은 익은데 도통 기억나지 않는 사람에게 빤히 보고만 있자니 어색하여 먼저 인사를 건넨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내리고 난 뒤 생각해 보니 가수 태진아 씨였다.
난 시인이나 소설가의 얼굴이 책 표지나 책날개를 장식하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인은 꼭 시인처럼 생겨야 하고, 소설가는 꼭 소설가처럼 생겨야만 한다는 선입견에 부합하지 못하는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원규 시인은 현재 지리산 자락에 산다. 내 보기엔 ‘겁나게’ 잘 산다. 몇 해 전 도법 스님 뵈러 실상사에 갔다가 해우소(解憂所)에서 볼 일 보고 나오는데 멋진 장년의 사내가 오토바이 - 모터싸이클 말고 오토바이다 - 를 타고 나타났다. 그가 먼저 아는 체를 하며 인사를 건넸는데 누군지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한 차에 명함을 건네어 받아보니 이원규 시인이었다.
아마 지금도 지리산 자락 어딘가에서 길가다 마주치면 몰라보고 지나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지리산 자락 어딘가, 섬진강 자락 어딘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아저씨들, 아줌마들을 보면 저 사람이 시인이겠거니, 저 사람이 소설가이겠거니 하면서 바라보게 된다. “겁나게와 잉 사이”를 오가는 그네들이 다 예술가고, 도인(道人)이겠거니 하면서 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