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에 대한 나의 마음은 이율배반적이다. '인간'적으로야 서정주가 밉지만 '문학'적 입장에서 서정주를 나는 미워할 수가 없다. 문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딜레마를 서정주는 잘 보여준다.
본래 표현용법상 '인간적이다'란 말은 너그럽다는 말과 이음동의어다. 인간이란 실수가 잦은 짐승이고, 실수를 통해 배워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해 인간적이라 표현할 때 우리는 먼저 그의 실수나 약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꽃미남' 스타에게 '인간적'이라 말하는 것은 스타로서 그가 지닌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다. 완전무결하여 흠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존재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정주의 경우, 한 인간으로서 양지를 쫓아가는 그의 생존본능은 너무나 인간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가 이토록 탁월한 시적 성취를 거두지 못했다면 도리어 쉽사리 면죄부를 받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건만 너무나 탁월한 시인이었으므로 그의 이와 같은 태도를 용납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그가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거두는 순간 그는 '꽃미남'스타에 버금가는 신성을 지닌 존재가 되므로 그가 지닌 인간적 흠결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서정주는 문학적 성취로 인해 구원받았으나 동시에 그 성취로 인해 버림받는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읽으며 나는 문득 '덤덤하게 살자'는 마음을 품는다. 섭섭하지만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조금만 섭섭한 듯 살고, 이별이라도 영 이별이라 하지 말고 죽어서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거든 만나기로 하는 이별로 살아가자. 연꽃을 만나러 가느라 가슴 쿵쾅거리는 바람이 아니라 이미 만난 바람처럼 덤덤하게 그것도 엊그제 만나고 돌아가서 아직 그 마음이 덜 씻겨진 바람이 아니라 한두 해쯤 전에 그렇게 진즉에 이별한 바람처럼 덤덤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