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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강윤후 - 쓸쓸한 날에

쓸쓸한 날에

- 강윤후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고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을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알리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 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더러운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들려주어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 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打電하는 것 같기에


<출처> : 강윤후, 다시 쓸쓸한 날에, 문학과 지성사,1995.

*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에야
비로소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란 사실을 알았다.

문학도, 예술도, 철학도 실연의 상처, 헤어짐의 상처...
그 너덜거리는 불면의 상처를 꿰매어주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노래들이 사나운 가시가 되어 달려들었고,
헤어진 이와 추억이 맺힌 장소를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별한 이가 나 없이도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모든 노래가사는 거짓이다.
그럴리가 없다.
나 없이 그대가 행복한 것이 무슨 의미랴.
그건 저주를 삿된 말로 꾸미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작별한 이의 행복을 마음속으로나마 빌어줄 수 있게 된 것은
간신히 그 사람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뒤였다.

사랑이란 ...
그런 것이다.

줄에 묶인 채 처량하게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한 마리 개처럼
왈왈 짖는 것, 자신의 목에 걸린 줄 길이만큼만 달려나갈 수 있는 것이다.
숨이 막혀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순간까지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일이다.    

고상하게 짖는 법을 가르치는 사랑은 없다.